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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핵심 암기할 사항

~고홍인 요약 핵심 수록~

사과나무 후보(작품성)

 ☞작은 얼굴, 앞뒤 꼭지 삼천리, 개미허리 모가지에 말라비트러진 지푸라기 같은 몸매와 일급수 심성! (고삿갓 제88호 참조)

☞어린 사과나무가 자라도록 퇴비가 될 수 있다면 기꺼히 나에게 남겨진 자존심까지도 ......

2010. 4. 16 고삿갓

 

 

재산법2-불법행위

2010년 이전 고홍인 수록

1. 의의 ~ 과실 또는 고의로 위법하게 법정채권관계를 발생하는 것이다. 사건에 지나지 않은 부당이득과 다르고 사람의 행위이지만 당사자 의사표시에 바탕을 둔 계약이나 법률행위와도 다르다.

2. 다른책임과의 관계 ~


①민형사 구분 ~ 손해 전보가 목적이고 형사책임은 가해자를 제재하는 목적이다. 소송법에서 손배청구와 검사기소가 다르고, 형사책임은 죄형법정주의와 유추해석금지의 원칙 그리고 고의범 처벌원칙이다.


②계약책임과 불법행위책임 구분 ~ 양자는 위법행위이고 과실상계가능하다. 그리고 계약을 전제로하지만 불법행위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과실을 입증해야한다. 그러나 원고의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경우도 있다. 소멸시효에서 계약책임손배청구권은 10년이고 불법행위는 안날로부터3년, 한날로부터 10년이며. 수동채권으로 상계하지 못한다.

3. 성립요건 ~

①고의 과실 구별실익 크지않지만 고의가 예견가능성이 추정되어 배상범위가 넓다. 개별적 사안에 따라 책임능력을 판단하고 법정감독자와 임의감독자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도 있다. 심신상실을 초래하는 일시적인 원인행위는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②위법성 판단기준 ~ 신체, 소유에 관한 절대권을 침해한 경우, 보호법규위반, 거래안전의무위반 등은 위법하다. 판단곤란부분은 비교형량이론에 의하여 사회적 혹은 개인적 유익함과 예상되는 불이익 정도를 비교한다. 그리고 위법성 조각사유는 정당행위, 정당방위, 긴급피난 등이 있다.

③인과 관계 ~ 사실적, 법률적 인과 관계가 있다. 증명책임은 원고에게 있다는 것이 통설 판례이다. 그러나 예외로 경험칙을 기초로 일응의 추정이나 법률에 의한 추정 증명전환이 인정된다. 개연성 이론이다.

4. 효과 ~


①손배청구에서 태아는 출생한 것으로 본다. 손배의무자로 감독자, 사용자, 도급인, 공동불법연대책임 등이고 손배청구권은 양도, 상속이 가능하다.


②일실이익손해는 이미 발생한 손해 전액과 이후 장래 발생할 손해에서 중간이자 공제 산정한다. 입원비 장례비 등 재산손해에 따른 적극손해와 피해자가 취득할수 없게된 수입 소극손해(일실이익)으로 구분된다. 판례는 일반 육체노동자 만 60세 까지를 가동하고, 가동일수는 월25일로 경험칙상 추정한다.


③과실상계와 손익상계 순서로 적용하여야 하고, 피해자 권리를 대위 가능한 손해배상자와 보험자 대위에 있어 제3자 가해자에 대한 피보험자의 손배청구권을 대위한다.

5. 사용자 책임 ~


①피용자에게 전액 구상 가능한 대위책임설과 입증불가시 또는 피용자 과실 책임능력 없는 경우 고유책임설이 대립한다.


②선임김독상의 주의의무 결여에서 증명책임은 사용자이며 전환과 면책사유의 인정에 대한 엄격한 제한은 사용자 책임을 무과실책임에 가까울 정도로 판례는 면책을 허용한 경우가 거의 없다.


③통설은 부진정연대채무로서 피용자 연대구상 인정하지만 판례는 피용자 책임은 제한되어야 한다고 한다.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되어 부당하다는 것이다.

6. 위험책임 ~ 지배하는 자에게 전적으로 장차 발생할 손해의 부담위험을 귀속시키는 책임체계이다. 고유한 귀책원리 무과실책임이다.

7. 타인에게 피해를 준 동물에게는 점유자나 보관자에게 책임이 있다. 상당한 주의의무 입증할 경우 면책 가능하다

 

 

 

 

상 법 1

제289조(정관작성 절대적 기재사항)

회사가 발행할 주식의 총수, 회사설립시에 발행하는 주식의 총수를 기재하고, 각발기인은 기명날인 또는 서명하여야 한다. 설립시 발행하는 주식의 총수는 회사가 발행하는 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이어야한다.

제368조(총회의 결의방법과 의결권의 행사)

이법 또는 정관에 정함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석 과반수와 발행주식의 4분의 1 이상의 수로서 한다. 무기명 방식의 주권을 가진자는 회일 1주간 전에 회사에 공탁하여야한다. 대리인 의결권행사 가능하고, 특별한 이해관계자는 행사 못한다.

제434(정관변경의 특별 결의)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 3분의 2 이상의 수와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수로서 한다.

 

제527조의2(간이합병)

소멸회사의 총주주의 동의 또는 주식총수의 100분의 90 이상을 존속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때, 소멸회사의 주주총회의 승인 결의를 이사회의 승인으로 갈음할수 있게 한다. 합병계약서 작성 2주내에 내용을 공고하거나 주주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총주주의 동의시는 아니다. 나머지 절차와 , 존속회사의 경우는 일반합병과 동일하다.

제527조의3(소규모합병)

합병후 신주의 총수가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5 를 초과하지 아니한때에 존속회사 주주총회의 승인결의를 이사회의 승인으로 갈음하고, 다만 소멸하는 회사의 주주에게 지급할 금액을 정한 경우에 존속하는 회사의 최종 대차대조표상으로 현존하는 순자산액의 100분의 2 를 초과하는 때에는 아니다. 존속회사는 합병계약서를 작성한날부터 2주내에내용을 공고하거나, 주주에게 통지하여야한다. 존속회사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20 이상 소유주주가 2주내 합병반대 의사를 통지한때는 소규모합병을 할수 없다. 나머지 절차와 , 소멸회사의 경우는 일반합병과 동일하다.

 

 

상법2

 

배서의 효력

* 3가지 효력 ~ 권리 이전적, 담보적, 자격 수여적

* 권리 이전적 ~ 배서에 의하여 어음의 권리는 피배서인에게 이전한다. 선의취득, 어음 항변의 절단 등 유통을 보호한다.

* 담보적 ~ 배서인은 피배서인과 후자 전원에 대하여 어음의 인수와 지급을 담보하는 의무를 부담한다. 즉 인수나 지급이 거절되면 배서인이 금액, 이자, 비용 등을 상환하여야 한다.

* 자격 수여적 ~ 어음 소지인이 배서의 연속에 의하여 형식적 하자가 없으면 적법하게 추정된다. 따라서 면책력, 선의취득, 배서의 외형적 연속으로 권리가 인정된다.

 


어음의 선의취득

* 의의 ~ 배서의 자격수여적 효력의 결과로 인정되어 형식적 자격을 갖추고 악의 중과실이 없는 경우, 양도인이 무권리자라 하더라도 어음상의 권리를 취득한다.

* 요건 ~ 어음법적 양도 방법에 의하여 어음을 취득하여야 한다. 따라서 상속, 합병, 유증, 지명채권 양도방법, 전부명령 경우에는 선의취득 인정되지 않는다. 배서의 연속으로 형식적 자격인 어음을 소지하여야 한다. 양도인이 무권리자 뿐만이 아니라 흠결, 하자가 있는 경우에도 포함된다. 그러나 취득자에게 선의 무중과실 이어야 한다.

* 효과 ~ 선의 취득자는 어음상의 권리를 원시취득한 반면에 진정한 권리자와 어음채무자가 희생된다.

*제권판결 ~ 어음을 상실하더라도 권리자체를 상실한 것이 아니다. 증권의 공시최고 절차중에도 선의취득 인정되지만 판결후에는 불복의 소에 의하여 판결이 취소되어야만 선의취득 인정된다는 판례의 입장이다.

 

 

 

재산법1

★ 민법에 규정된 전형계약14가지를 한자로 기재하라.

贈與, - 賣買, - 交換, - 使用貸借, - 消費貸借, - 賃貸借, - 雇傭, - 都給, - 委任, - 任置, -

懸賞廣告, - 組合, - 終身定期金, - 和解, -

★일상용어

壹, - 貳, - 參, - 拾, - 白, - 千, - 萬, - 億, - 契約書, - 結婚, - 賻儀, - 還甲, - 專貰, - 圓整

 

 

 

 

천간, 음양 오행의 뜻

 

陽 (+) : 힘과 준비와 잠재의 의미

陰 (-) : 陽의 결과적인 나타남

 

甲 (陽木) : 큰 나무, 0에서 1로 시작하는 생성, 하늘, 자연을 의미

乙 (陰木) : 젖은 나무, 나무가 물을 만나 독자적으로 살아남

丙 (陽火) : 열기가 솟구치니 파괴, 전쟁, 병, 위험 또는 호걸풍의 사람

丁 (陰火) : 작은 불은 큰 불로 만들어 줄 귀인을 기다림.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

戊 (陽土) : 마른 흙, 넓은 땅, 큰 일을 위한 장래의 희망과 목적 의식이 싹트기 시작

己 (陰土) : 젖은 흙, 비옥한 땅, 비옥한 땅을 메꿔 꽃피울 것을 찾아 헤매게 된다.

庚 (陽金) : 딱딱한 바위, 안정성이 없고 파괴될 위험성이 많기에 항상 불안정, 잡욕이 생긴다.

辛 (陰金) : 땅 속의 바위, 고집스럽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까다로움과 혁명적인 기질

壬 (陽水) : 열을 받아 더운 물, 흐르는 물, 권모술에 능하고 임기웅변에 뛰어나지만 끈기가 없음

癸 (陰水) : 고인 물, 주위를 평화롭게 해줄 수 있으나 무해무득, 안일에 빠지기 쉽다.

 

 

열두 동물로 표시되는 地支의 뜻과 人性

子 (쥐), 丑 (소), 寅 (범), 卯 (토끼), 辰 (용), 巳 (뱀), 午 (말), 未 (양), 申 (원숭이), 酉 (닭), 戌 (개), 亥 (돼지)

 

 

일반상식

국명
면적
인구
면적순위
인구순위
러시아 1707만 1억4천 1 5
카나다 998 3천 2 6
중국 957 13억 4 (3위로 자칭함) 1
미국 963 3억 3 (지도상 육안3위) 3
브라질 851 1억8천 5 4
호주 769 2천 6 7
인도 316 12억 7 2
         
         
         
프랑스 54 6천 8 9
일본 37 1억2천 9 8
독일 35 3천 10 11
영국 24 6천 11 10
 

 

행정법1

1. 행정조직법, 행정작용법, 행정구제법

2. 법치행정의원리, 기본권보장의원리, 죄형법정주의

3. 법의 지배란 중세의 법우위사상에서 시작 영미법의 근간으로 발전

4. 헌법의 최고규범성, 인권적정절차, 법원의 역할

5. 법치주의 개념은 제2차 대전전의 독일의 법치주의 관념

6. 형식적 법치주의, 사회적(실질적)법치주의

7. 사회적 법치주의는 제2차대전후에

8. 법치행정의 사상은 법률의 합리성

9. 법치행정의 이념은 안정성의 요청(자유주의)과 민주적 통제 요청

10. 경찰국가 부정과 야생마를 법률의 울타리안에 머물게

11. 근대 행정조직의 존재가 국민의 권리의무와는 무관하다고 생각

12. 법률의 지배에 ~ 법률의 법규창조력, 법률의 우위, 법률의 유보

13. 법규의 개념 ~ 권리의무에 관한 법규범, 법규창조력은 최협의이다.

14. 법률의 우위 ~ 행정작용과 입법작용의 충돌모순은 후자우선

15. 일반적 추상적, 개별적 구체적, 권력적 비권력적, 구별하지않고 모든 행정작용에 사정거리 적용

16. 법률의 부존재, 침묵의 해결원칙은 유보의 의미

17. 침해유보설, 전부유보설, 권력행정유보설

18. 최소한으로 침해유보설이 권리와 의무에 관한 사항에만 법률유보를 한정

19. 조직규법, 근거규범, 규제규범

20. 특별권력관계설, 행정규칙론, 자유재량론

21. 절차적 민주주의 ~ 합법성, 정당성 확보

22. 절차법의 역사 ~ 영국에서 발달

23. 예방적 사전적 행정규제

24. 내부절차와 외부절차, 사전사후 행정절차, 처분과 지도 절차, 권리보호 절차(제4기준)

25. 공정성, 투명성, 신뢰성

26. 자연인, 법인, 법인아닌 재단 사단, 기타 법령에 의한 권리의무 주체

27. 3인 이내의 대표자 선정요청

28. 사리분별 지능자에게 교부송달

29. 도달, 입력, 공고14경과 효력

30. 처분의 신청은 1회 한하여 연장

31. 청문 10전 까지 통지

32. 처분 1년내 서류 기타물건 반환

33. 처분은 문서로

34. 당사자가 구술의견 제출시 서면기록

35. 기피신청, 주재회피

36. 서면, 전자, 구두통지 그리고 재개가능

37. 14 전까지 공청회 개최 통지

38. 입법예고 20일 이상

39. 행정예고 20일 이상

40. 10 이내 공개여부 결정 10 범위내에서 연장가, 20일내 공개여부결정 아니할시 결정추정, 이의신청7일 이내에 결정

41. 행정심판 재결청은 관계중앙행정기관장

42. 행정소송 ~ 제3자 3 이내에 비공개 요청, 의사에 반하여 공개시 서면통지하고 7 이내에 이의신청

43. 내부조직, 인적수단, 물적수단

44. 행정작용법에 관한 총칙법이 없기 때문에 학설(이론)이 역할

45. 법전체를 행정작용법이라고

 46. 행정작용법 기능 ~ 행정작용을 구속하는 소극적 측면과 권리이익 보호하는 법치행정원리

47. 행정작용의 분류 ~ 주체, 내용, 성질, 형식

48. 규제 급부행정 ~ 권력행정과 규제, 비권력과 급부, 동일사용경우 있으나 아닌 경우도

49. 행정작용의 형식 ~ 행정입법, ~계획, ~행위, ~강제, ~벌, ~지도, ~계약,

50. 행정작용의 기준 ~ 행정입법과 행정계획이 있다. 행정입법은 법규명령과 행정규칙으로 나누고 위임명령과 집행명령으로 구분

 

51. 행정입법 ~ 행정행위(개별적 구체적), 행정입법(일반적 추상적)

52. 행정계획 ~ 목표의 설정, 종합적 조정

53. 행정입법 ~ 시행령, 부령, 고시, 지침

54. 전문성, 사정변화, 지역특색, 정치적 중립

55. 행정입법 ~ 법규명령과 행정규칙

56. 법규의 최협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법규범

57. 법규명령은 외부효과, 행정규칙은 내부효과

58. 법규명령 ~ 집행명령과 위임명령

59. 집행명령은 실현을 위한 절차, 위임명령은 내용자체를 정하는 것

60. 재위임은 소극적으로 이해, 처벌규정과 조세요건의 위임은 제한적

61. 법규명령 ~ 위임명령인지 집행명령인지

62. .....법의 규정에 기초하여 이 시행령을, ......법을 실시하기 위해서 이 시행령을 제정

63. 독립명령, 긴급명령

64. 실무에서 대통령령은 시행령으로 부령은 시행규칙

65. 법규명령으로 벌칙을

66. 행정규칙 ~ 법규의 성격없는 행정입법

67. 행정규칙은 고시, 훈령, 지침, 예규 그러나 법규성이 있다는 적극설이 타당

68. 행정계획이 변경되는 경우 행정쟁송, 헌법소원, 손배, 손실보상

69. 공고, 열람, 의견서, 공청회, 심의

70. 신뢰보호 손실보상, 이해관계인 절차적 참여, 형량명령제도, 금반언의원칙

71. 행정계획의 대부분은 행정내부적인 과정

72. 종래의 행정법학관심사는 권력작용이였다.

73. 행정지도란 작위 부작위를 지도, 권고, 조언

74. 사실행위는 법적행위와 대립개념

75. 적법 위법, 유효 무효,

76. 사실행위는 유, 무효 효력문제 발생없어 취소대상 아니다.

77. 행정지도 ~ 법의미비 보완, 행정수요대응, 책임소재 불분명

78. 행정지도 존재 이유 ~ 책임확대, 유연한 대응, 정보와 지식 제공, 분쟁 사전회피

79. 행정조직법상 근거가 없는 행정지도는 무효다. 그리고 행정작용법상은 조성적, 수익적, 사전지도는 근거 필요없다. 그러나 명령권한 배경, 규제, 자유와 권익보호에는 필요하다.

80. 조언적, 규제적, 조정적으로 목적분류

81. 행정지도는 최소한에서 그쳐야하고 사실행위이므로 취소없다.

82. 급부의 정지나 폐지, 남용될시 취소소송과 국가배상소송

83. 국가배상법은 비권력작용도 포함, 따라서 위법한 행정지도 손배청구가능

84. 행정계약은 일방적 행정행위와 다르고, 공법상의 합동행위와 다르다.

85. 행정계약 ~ 민사관계는 쌍방, 행정과 국민의 관계에서는 단독행위 원칙

86. 공법계약설 ~ 행정상 법률관계는 공법, 사법관계 대별된다. 그리고 공법관계는 권력관계, 관리관계로 세분되고, 계약은 관리관계이다.

87. 행정계약설 ~ 공법계약이란 행정법의 규정에 의해 체결되고, 계약의 근거법이 공법인지 사법인지 관계없다. 즉 행정계약은 비권력적인 법행위.

88. 행정계약 종류 ~ 조직법상의 계약, 작용법상의 계약

89. 행정계약에는 원칙적으로 법률의 근거 필요없다. 즉 사법상계약

90. 그러나 행정주체간의 계약에는 근거필요

91. 행정계약은 일반적으로 민사소송, 공법상 당사자소송

 

행정법2

1. 사업인정의 법적성질과 고시효과를 논하라.

공익사업 시행자와 피수용자 사이에 구체적인 권리 의무관계 형성으로 행정행위이고, 수용권설정으로서 설권적 행정행위이며, 재량행위로 보는 다수설과 판례입장이다. 사업인정은 고시일 부터 효력발생하여 실체적, 절차적, 부수적 효과를 발생한다. 범위가 확정되고, 관계인 제한, 토지 보전의무, 조사권, 손실보상액이 공시지가로 고정된다. 고시일부터 1년 이내에 재결신청 아니하면 실효.

2. 손실보상의 원칙을 논하라.

시행자 보상의 원칙, 사전, 현금, 개인별, 일괄 보상의 원칙과 사업시행이익과의 상계금지 원칙이다.

 

3. 환매권의 의의와 요건을 논하라.

목적물이 공익사업에 불필요 또는 현실적으로 수용되지 않는 경우, 소유권 회복권리로 재산권 내용에 포함한다. 환매권자는 취득일 당시 토지 소유자 및 포괄승계인 이고, 수용개시일 10년 이내 사업폐지, 변경사유로 토지 일부 또는 전부가 필요없게 된 경우와 5년 이내 전부를 사업에 이용 아니한 경우 환매할 수 있지만, 전자는 필요없게 된 때로부터 1년, 취득일 부터 10년이고, 후자는 6년 이내 행사하여야 한다. 시행자가 환매자 공고 및 통지시에는 6월이 경과하면 환매권 행사 실효된다. 다른 공익사업으로 변경된 경우에는 변경 고시일 부터 기산하는 예외가 있다.

 

 

[정치, 외교학] G8정상회담의 국가는 어디어딘가요 2004.06.12
미국,일본,영국,러시아,프랑스,독일 나머지 두나라는 어딘가요 나머지 두 나라는 이탈리아, 캐나다입니다... 원래는 G7(seven) 입니다. 러시아가 1998년에 플러스 되었죠

 

 

흑사병

현대에도 에이즈라는 죽음의 전염병이 있지만, 그것은 세계 전체를 뒤바꿀 만큼 무시무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었던 근대 이전 사회에서 커다란 전염병의 발생은 사회적ㆍ경제적 변화 뿐만 아니라 사람의 심성까지도 바꾸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커다란 전염병이란 바로 중세 시대에 유럽에 유행했었던 흑사병(Black Death)이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발생했던 모든 재앙들 가운데에서도 흑사병은 가장 끔찍한 것이었다. 흑사병이 있기 전의 전염병들은 맹렬했지만 대체로 발병 기간이 짧았고 좁은 지역에 한정되었었다. 이와 달리, 예외 없이 불과 1348년에서 1350년 사이에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은 대략 2,500만 명에서 3,500만 명에 달했다. 이것은 그 당시 전체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할 만큼 많은 수이다.

어떤 재앙은 너무나 갑자기, 그리고 너무나 강력하게 몰아 닥치기 때문에, 희생자들은 재앙에 대해 채 알아 보기도 전에 순식간에 죽어 나가기도 한다. 그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흑사병은 정말이지, 무서운 재앙이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그런 재앙이었다.

흑사병은 1334년, 중앙 아시아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이 본격적으로 유럽에까지 퍼지게 된 까닭은 1346년 경의 카파 성(오늘날 러시아 남부의 페오도이야) 전투 때문이었다.

성을 공격하던 킵차크 칸국(몽골의 한 부족)의 병사들이 자꾸만 죽어 가자 지휘관들은 돌을 쏘아 보내는 기구를 사용해 부패한 병사들의 시체들을 성벽 안으로 날려 보냈다. 카파 성 안에는 이탈리아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성을 탈출하여 흑해를 거치는 지중해 항로를 따라 고국 이탈리아로 피난갔다. 이 때, 그들과 함께 흑사병균이 유럽으로 옮겨 들어 왔던 것이다.

1347년 경에 흑사병이 이탈리아 전역에 걸쳐 만연하였다고 한다. 결국 흑사병균은 상인들의 옷이나 물건 등에 묻어서, 혹은 배에 같이 탄 쥐벼룩에 물린 쥐나 이미 감염된 환자가 뱉은 가래침 따위를 통해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전해졌을 것이다.

1347년, 가을에 이탈리아를 강타한 흑사병은 같은 해 말에는 마르세유와 아비뇽을 전염시켰고, 1348년에는 프랑스 전체를 휩쓸었다. 예컨대 흑사병으로 인해서 당시 5만에 육박하던 피렌체 시의 인구는 무려 5분의 1로 줄어 들었고, 파리 시의 인구는 15만에서 5만이 죽었다고 한다.

1349년에는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에도 상륙하여 이듬 해에는 영국 전체를 공포로 몰아 넣었고, 영국은 거의 절반의 인구를 잃었다. 이 때 스코틀랜드는 적국인 영국이 흑사병으로 고통받는 것을 보고, 그들을 물리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그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 무서운 것이었다. 영국인들을 공격했던 스코틀랜드 병사들 역시 흑사병에 감염되었고, 고국으로 돌아 온 병사들에 의해 이 병이 퍼져 나가 스코틀랜드 전체가 흑사병에 시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350년에는 흑사병이 북유럽을 거쳐 아이슬랜드와 러시아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흑사병이 빠른 속도로 전염된 이유는 당시 활발한 무역에 의한 잦은 왕래와 도시의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이었다.

수년 간에 걸친 흑사병의 유행은 전 유럽에 엄청난 결과를 몰고 왔다. 물론 흑사병의 화를 면한 곳도 없지 않았으니 도시와 농촌, 신분이나 성별의 구별 없이 모든 유럽인들을 죽음의 공포에 떨게 하였다. 인구가 줄어 들은 유럽에는 무시무시한 침묵과 신음 소리만이 널리 퍼져 있었다.

흑사병은 흔히 가난하거나 허약한 사람을 주로 희생자로 삼았다. 프랑스를 강타한 흑사병 역시 가난한 이들을 청소하듯이 깨끗이 사라지게 했다고 전해진다. 스스로를 잘 지킨 부자들은 질병을 피해 가거나 가난한 여인을 사서 흑사병이 지나 간 집에 거주케 하여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했다. 이러한 것으로 우리는 질병의 계급성을 엿볼 수 있다.

최후의 심판의 날이 가까웠다고 생각했던 농부들은 곡식을 심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이것은 그냥 평범한 유행성 전염병이 아니었다. 윌리엄 랭거에 따르자면, "중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은 흑사병을 인간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벌이라고 생각하였다."

원래 흑사병은 페스트(pest)의 일종인데 그 중에서도 폐(肺) 페스트를 가리킨다. 그 외에도 선(腺) 페스트와 피부 페스트가 있는데 당시 유행은 초기에는 선 페스트가, 나중에는 폐 페스트가 유행하였다. 그 증세를 보면 선 페스트는 머리, 겨드랑이, 사타구니로 병균이 침입하여 온 몸에 심한 열이 나면서 떨리고, 2~3일 후에는 정신을 잃고 횡설수설하다 죽어 간다. 사망률은 지금도 50~70%에 이르고 있다.

폐 페스트의 경우는 병균이 폐에 침입하여 피를 토하고 40도 전후의 고열을 내고 호흡이 곤란해지면서 정신을 잃는다. 대부분 발병한 지 24시간 이내에 사망하게 되는데, 이 폐 페스트를 흔히 흑사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망 직전에 폐 페스트 환자는 피부가 흑색이나 자색으로 변하고 선 페스트에 비해서 사망률이 훨씬 높다는 점에서였다.

페스트 균이 발견된 것은 19세기 말, 파스퇴르에 의해서였으니까 중세 유럽인들이 페스트의 발병 원인과 치료법을 알았을 리가 없었고 그들이 취한 조치는 빈번히 역효과를 낼 뿐이었다.

특히 유다인들이 샘이나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은 대규모적인 유다인 대학살을 가져 왔다. 특히나 유독 유다인만이 사는 곳에는 병에 전염되지도 않고 죽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그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특히나 독일인들의 의심은 한층 더 심해졌다. 그래서 동족을 잃은 독일인의 슬픔이 곧 유다인에 대한 질투와 증오로 바뀌어져 당시 수많은 유다인들이 이유도 모른 채 독일에서 애매하게 생매장되거나 타 죽어 갔다. 유다인들이 이렇게 당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교도들이 평소에 미워해 온 이교도들이였다는 점과 지금도 그렇지만 유다인들은 상술이 뛰어나서 돈을 너무 잘 벌었기 때문이었다. 유다인 학살이 점점 확대되자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교황 클레멘스 6세는 1348년 9월 26일, 이같은 소문을 일축하는 칙서를 내리면서 유다인들을 보호해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독일인들의 만행을 중지시키지는 못했다. 참으로 끔찍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왜 모든 유럽인을 공포와 죽음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흑사병이 유독 유다인에게만은 그 위력을 떨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당시의 유럽인에 비해 유다인은 율법서에 나오는 말씀대로 정결케 하는 예법에 따라 몸을 자주 씻어 병에 대한 예방력을 크게 했으며, 전염병이나 나병 환자는 가족이든지, 아니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격리시킴으로써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기 막힌 사건은 이단 종파들의 광적인 행동이었다. 흑사병의 물결을 막기 위한 교회의 종교적인 기원이 실패하자 교회에 불만이 생겼고, 그래서 흑미사(검은 미사) 같은 반 그리스도교적인 행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어떤 광신자들은 완전한 알몸이거나 반 나체의 남녀가 성가를 부르며 손에는 십자가와 못이 박혀 있는 가죽 끈을 들고 도시와 도시를 돌아 다녔다. 그들은 거리를 다니면서 그 가죽 끈으로 미리 규정된 의식에 따라서 자신의 맨살을 채찍질 하여 살점이 찢어지고 온 몸이 피 투성이가 되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들을 변태 성욕자들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어이 없는 행동은 흑사병과 함께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영국, 스웨덴 등 유럽 각지로 번져 갔다. 이들은 흑사병을 신벌이라고 여기고 자기 몸을 학대하는 이러한 고행을 통해 신의 노여움을 푼다는 것이었다. 신의 노여움이 꼭 알몸의 남녀가 자신의 몸을 학대해야만 풀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것이 흑사병을 막고자 하는 행동이었다는 점에서 웃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흑사병은 유럽 역사의 진로를 바꾼 대격변이었다. 그것은 유럽의 경제 뿐만 아니라 종교에도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교회가 세속을 능가하는 우월한 위치로 올라선 데는 과거에 유행한 역병들이 큰 역할을 했다. 따라서 흑사병 같은 엄청난 재앙이 2천년 동안 굳건한 토대를 쌓은 교회의 권위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유럽 전역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었던 지배력 덕분에 그런 폭풍을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교회의 권위는 흑사병 때문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교회가 질병 앞에 무기력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흑사병이 프로테스탄트교의 출현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또한 유럽의 문화는 두려움, 죽음, 죄를 기본 소재로 하여 변화하였다.

의학적 무지에 의해 흑사병의 피해가 더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역설적으로 흑사병은 상업의 발달로 인한 물자 교류의 확대에 의해 급속히 퍼져 갔다. 이것이 당시 농업 생산력의 정체로 나타난 봉건 경제의 전반적인 위축과 맞물려 커다란 희생을 초래했다. 따라서 어찌 보면 흑사병은 근대 사회로 이행하는 길목에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고통이었을 지도 모른다.

 

 

제1편 형사정책의 기초

제5강 범죄학의 역사

근대 이전에는 초자연적인 설명방법 이였으나 점차 철학적, 과학적인 사고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고전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사를 전제로 범죄와 형벌의 균형을 강조하였고, 산업혁명 후에는 실증주의가 도입되어 아노미이론, 문화갈등이론, 하위문화이론, 차별적접촉이론, 사회통제이론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범죄원인론과 달리 형성과정에서 낙인이론이 등장 갈등이론으로 발전되었고, 갈등이론은 마르크스주의와 결합하여 급진 범죄학을 형성하게 된다. 

 

1. 서설

지구상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4 사람 가운데 절도범과 공범인 이브와 아담, 그리고 살인자와 피해자인 카인과 아벨 이였다. 인간과 범죄는 처음부터 떨어질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 이였다. 범죄에 관하여 과학적인 연구를 범죄학이라고 한다.


2. 근대 이전의 범죄와 형벌

범죄의 개념은 수메르의 함무라비법전(B.C. 1750), 이스라엘의 모세율법(B.C. 1200), 그리고 로마의 12표법(B.C. 451) 등이다.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생각이 시작된 근대이전 영국의 대헌장(1215), 독일의 카롤리나 형법전(1532), 프랑스의 형사칙령(1670), 등이 규율하였지만 18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발전하기 시작되었다.


3. 근대 이후 범죄학이론의 발달

새로운 시대와 사상의 도래로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옮겨졌다. 뉴턴(1642~1727), 하비(1578~1657), 갈릴레이(1564~1642), 케플러(1571~1630) 등 의하여 천문학, 물리학, 의학, 생물학 등이 발전 하였고, 이러한 변화의 바탕으로 베카리아(1738~1794)와 벤담(1748~1832)은 고전주의 범죄학을 형성하게 된다. 베카리아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근본 원리로 사회계약론을 신봉하면서 사형이나 고문을 폐지시켰다. 벤담은 베카리아가 주장한 공리주의 이론을 발전시켜 파놉티콘 감옥모델을 제시한다. 이태리학파 롬브로조(1835~1909), 페리(1856~1929), 가로팔로(1852~1934)는 실증주의 범죄학을 도입하였고, 이태리학파 이외에도 사회통계학을 이용하여 범죄문제를 다루려고 했던 케틀레(1796~1874), 게리 학자들이 있었다. 현대의 실증주의 범죄학으로 생물학적, 심리학적 범죄학 이론이 발달하여 유전이론, 체형이론, 모방이론을 주장, 후일 미국의 서덜랜드 등이 주장한 학습이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4. 범죄사회학의 발전

*콩트로부터 시작된 사회학이 범죄학에 도입된 이후 범죄학이론은 한층 깊이와 범위가 심화되었다. 그밖에도 다양한 견해들이 범죄학에 영향을 미친다. 스팬서(1820~1903)다윈의 이론 이용 적자생존과 베버의 문화적, 종교적 세력 사회지배, 또 1887년 퇴니스는 공동사회와 이익사회로 구분하였다. *다양한 연구가운데 범죄학에 가장 큰 공헌을 미친 사회학 창시자 에밀 뒤르켐과 아노미 이론이다. 범죄는 정상적인 것, 불가피한 사회적 행위로 결론 인간본성의 일부라고 하였다. 그의 저서 자살론에서 아노미 의미는 무규범상태, 사회붕괴 개념은 훗날 머튼이 사용한 아노미와는 차이가 있다. 계급사회적 목적과 수단이 분열된 것, 으로 긴장이론의 토대가 된다. *시카고학파와 문화갈등이론은 20세기 초 파크, 버지스, 위드, 시카고대학 사회학과 학자들은 사회붕괴가 사회생태학에 미친 영향에 초점, 사회적인 힘이 범죄를 일으킨다고 결론, 후에 셀린이 발전시켜 문화갈등이론으로 전개 일차적 갈등과 이차적 갈등으로 구분 설명한다. *하위문화이론은 각계각층 공유하는 문화와는 별개로 특정한 집단에서 가치나 규범체계를 의미 코헨(비행소년)1955년과 오린(비행과 기회)1960년 저서에서 차별적 기회론 주장, *학습이론(차별적 접촉이론)이다. 나이많고 경험이 많은 범법자들로부터 범죄를 배운다. 그리고 비행을 통제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다. 전자는 학습이론이고, 후자는 사회통제이론에 해당한다. *다음은 낙인이론이다. 사회적배경에서 가진자(유산자) 가지지못한자(무산자)로 구분 원인보다는 범죄 자체가 형성되는 과정에 관심을 가졌다. 낙인이론이 발전되어 *갈등이론과 급진범죄학이론이 볼드와 퀴니, 터크 등이 있다. 힘이없는 사람들 행위가 범죄로 정의되기 쉽고, 더 사법절차의 대상이 된다. 주장 급기야 마르크스 이론과 결합 급진범죄학이론의 새로운 등장이 있었다. 마르크스(1818~1883) 는 헤겔(1770~1831)의 변증법 이론을 적용하였다. 범죄문제를 크게 다루지는 않았으나 엥겔스(1820~1895)는 “노동자 계급의 조건”에서 조금 다룬다. *전체요약하면 고전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제로 범죄를 통제해야한다. 대표학자는 베카리아, 벤담 이다. 실증주의는  결정론을 전제로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관찰과 측정을 통해 문제해결, 대표학자는 이태리학파 롬브로조, 페리, 가로팔로 이다. 생물학적 범죄이론은 유전이론과 체형이론으로 전자는 가계연구, 후자는 체형에 관한 연구다. 한편 심리학적 범죄학이론은 지능, 인성, 학습 등 정신적인 면 고링과 타르드 그리고 범죄사회학이론으로 뒤르켐의 아노미이론과 차별적기회이론, 차별적접촉이론, 사회통제이론, 낙인이론, 갈등이론, 급진범죄학 등 다양한 분야로 발전된다.

*연습문제~가장 고전적인 범죄원인에 대한 설명방법은 영적설명방법 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주의는 공리적인간을 상정하고 있다. 실증주의 연구의 대표적 학파로 이태리학파. 고전주의는 자유의지 인정, 공리주의, 죄와형벌의 균형, 파놉티콘 감옥모델 이다. 고링은 롬브로조의 생물학적 결정론을 부정하였으나 범죄원인을 저지능에 있다고 보았다. 타르드의 심리학적 접근방법을 모방이론이라 하며 이는 미국의 학습이론에 영향을 미쳤다. 유전과 범죄에 관한 연구도 실증주의적 연구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뒤르켐은 범죄가 정상적인것이며 불가피한 사회적 행위라고 하였다. 서덜랜드 차별적 접촉이론에 대한 설명 ~ 범죄자와 접촉이 있다고 바로 학습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행위를 학습하는데에서 비롯된다. 정상적으로 학습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제2편 범죄원인론

고전주의 범죄학파는 계몽사상과 인도주의에 입각한 19세기 자유주의적 범죄학파를 말한다. 형법개혁운동의 대표적인 학자는 베카리아, 포이어바흐, 등이고 감옥개량운동의 대표자는 하워드


제6강 범죄학이론1-고전주의학파

1. 서설

인도주의적 형사정책은 하나는 형벌의 완화를 주장 형법개혁운동이요, 다른 하나는 행형시설로서 감옥개량운동이다. 전자는 베카리아, 벤담, 포이어바흐 등이고, 후자는 하워드


2. 인도주의적 형사정책

*형법개혁운동 ~ 베카리아(1738~1794)이탈리아 학자로서 가혹한 형벌제도의 개혁 및 완화 주장, 벤담(1748~1832) 영국의 공리주의 사상은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 기치로 범죄와 형벌의 균형을 주장하였고, 파놉티콘형 교도소 구상. 페스탈로치(1745~1827) 저서 입법과 영아살해를 통해 교육사상을 강조, 내적교육, 사회교육, 직업교육을 강조. 포이어바흐(1775~1833) 형법교과서에서 형사정책 이라는 용어 처음사용하였다. 루소의 계몽사상과 칸트의 관념론 철학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벤담의 공리주의 색채도 띠고 있었다. 심리강제설은 쾌락주의에 기초하여 전개되고 있다.

*감옥개량운동 ~ 하워드(1776~1790) 개몽철학적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영국등 유럽의  감옥을 답사 실태파악 감옥에서 형벌을 집행하는 목적은 노동습관을 교육시키는데 있음을 강조하고, 근대적 교도소 설립을 위하여 교도소법을 기초하여  독거감옥이 설립되었다. 


3. 고전학파의 형벌이론과 범죄이론

범죄학의 창시자라고 하는 베카리아가 가장 효과적인 범죄예방정책은 교육제도이고, 형벌의 근본목적은 심리강제설을 기초로 예방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와 달리 고전주의 형법학자들은 형벌이론을 응보형주의의 입장과 객관주의 범죄이론으로 구분된다.

*전체요약 ~ 고전주의 범죄학파는 인도주의, 자유주의적 경향을 가진 학파로서 형법개혁운동과 감옥개량운동에 관심. 고전주의학파는 전근대적인 죄형천단주의 내지 규문절차와 결별하고, 자유의지를 가진 추상적인 인격인을 전제로 한 죄형법정주의와 탄핵주의를 그 기조로 하고 있다. 베카리아는 사형폐지론과 죄형균형론 등을 주장. 포이어바흐는 심리강제설을 바탕으로 일반예방주의를 강조 죄형법정주의 사상의 토대를 이루었다.

*연습문제 ~ 고전주의학파는 형법개혁운동, 감옥개량운동, 인도주의 형사정책 이다. 고전주의 범죄학자는 베카리아, 벤담, 포이어바흐 이다. 벤담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파놉티콘형, 범죄행위는 학습된 행위 주장. 페스탈로치 교육형사상은 리프만, 란자, 살다나 관계있다.


제7강 범좌학이론2-실증주의학파

실증주의학파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의거 범죄인을 실증적으로 연구 범죄원인을 규명하고, 범죄방지대책을 강구한 형사정책학파이다.  선구자는 이탈리아의 롬브로조 목적형사상과 사회행위를 주장, 특별예방주의를 강조하고, 범죄이론에 있어서 주관주의의 입장에 있다.


1. 서설

*실증주의적 형사정책 ~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됨에 따라 범죄가 격증하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전통적인 고전학파 이론에 대해 법리적으로 재검토를 시도한 학파가 등장 실증주의학파, 형사정책학파, 근대학파라고 부른다. 롬브로즈, 페리, 가로팔로 등 이탈리아 출신인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고, 리스트 범죄사회학파에 의해 확립되어 그 후 리프만과 란자, 살다나에 의해 교육형론으로 개선 발전했다. 형벌이론으로는 특별예방주의를 강조하고, 범죄이론은 주관주의 입장이다.

*연혁 ~ 범죄현상에 대한 통계적 연구가 1805년 영국에서 처음 시도된 후 1826년 프랑스 게리 본격적 연구가 이루어져 통계학의 아버지 케틀레 등 제도학파에 이르러 종전의 개별적현상이 아닌 사회집단현상으로서의 범죄의 특성을 강조 과학적 범죄연구 시도.


2. 현대적 형사정책학파

현대 형사정책학의 선구자는 일반적으로 이탈리아의 롬브로조라고 한다. *이탈리아학파로 롬브로조 외 페리, 가로팔로 가 있다. 그리고 *프랑스학파로 라카사뉴, 타르드, 뒤르켐. *독일학파는 리스트, 아사펜부르크. *오스트리아학파로 그로스, 렌츠, 젤리히 등이다.

3. 형벌이론과 범죄이론

*형벌이론 ~ 목적형주의, 특별예방주의로 구분된다. 실증주의학파 형벌이론은 형벌의 목적을 강조하는데 있다. 즉 형벌은 범죄로부터 사회를 방위하고 보전하려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고, 특별예방주의는 고전학파의 일반예방주의가 특별한 사람을 대상으로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려는 특별예방을 강조하고 있다.

*범죄이론 ~ 주관주의와 연결된 실증주의학파의 형사정책은 형벌의 대상은 범죄사실이 아니라 범죄인이 되어야 하고 객관적 사실보다는 주관적인 행위자의 반사회적, 악성, 위험성에 따라 경중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이론.

*전체요약 ~ 고전실증주의학파는 범죄인을 실증적으로 연구하여 범죄원인을 규명하고 방지대책을 강구 사회방위와 특별예방이라는 형사정책적 방향을 제시한다. 롬브로조 등의 이탈리아학파는 범죄의 주된 원인을 유전적 소질에 두고 연구, 특히 페리는 사회적 환경도 강조 의사결정론과 형벌대용물로 보안처분을 주장하였다. 타르드의 모방의 법칙은 거리의 법칙, 방향의 법칙, 삽입의 법칙으로 삼분 미국의 학습이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리스트는 특별예방적 관점에서 범죄인을 반사회성에 따라 분류하고 형벌은 사회적 위험성에 따라 개별화 할것을 주장하였다. 특별예방주의는 이탈리아 롬브로조 등의 범죄인류학파에서 비롯되어 리스트의 목적형사상에서 강조되고 리프만 등의 교육형주의로 이어지는데 결국 사회방위라는 목적형사상을 강조한 것이다.

*연습문제 ~ 범죄인을 자연범과 법정범으로 구별한 학자는 가로팔로. 프랑스학파가 주장한 내용은 범죄원인으로서의 경제적 사정, 사회적 접촉과정을 통한 모방심리, 사회문화구조상의 모순에 기인한 자살. 독일학파 리스트와 관계 있는 것은 마르부르그 강령, 형법의 개별화, 국제형사학협회  


제8강 범죄학이론3-범죄사회학파

범죄사회학은 범죄의 원인을 개인의 소질이나 특성이 아닌 환경에서 찾으려는 입장이다. 범죄사회학은 사회구조이론과 사회과정이론으로 나누고, 사회구조이론은 사회구조 자체가 범죄를 유발하는 요인을 내재시키고 있다고 보는 관점으로 사회해체론, 긴장이론, 문화비행이론 등이다. 사회과정이론은 범죄행동을 학습하는 것이 범죄를 유발한다고 보는 관점이며, 이에는 학습이론, 통제이론, 낙인이론, 등이다.


1. 범죄사회학의 대두

범죄의 원인이 개인의 소질이나 특성이 아니라 개인이 처해있는 환경에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 대한 연구가 20세기 초 시카고대학의 사회학부에 소속된 파크(1864~1944), 버제스(1886~1966), 워드(1897~1952) 등 시카고학파로 대두되었다.


2. 범죄사회학의 분류

거시환경론은 사회적 상태, 경제구조, 문화 등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 광범위한 사회환경에 주목하는데 반하여, 미시환경론은 개인이 처해있는 주변상황에 주목한다. 전자에 해당하는 이론은 사회해체론, 문화전달론, 사회적 긴장이론, 아노미이론, 하위문화이론 등이다. 한편 후자는 학습이론, 통제이론, 낙인이론 등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범죄 사회학을 사회구조이론과 사회과정이론, 갈등이론으로 구분하기도한다. 갈등이론은 사회에 내재하는 다양한 갈등이 범죄를 유발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3. 사회구조이론

경제구조 불평등, 사회계층화가 발생 하류계층에 집중되어 있는 범죄는 관점에 따라 다시 사회해체론, 아노미이론(긴장이론), 문화비행이론(하위문화이론) 등으로 나눈다. *사회해체론 ~ 사회질서가 무너져 사회가 해체되고, 사회의 해체는 가정, 학교, 집단은 비인간화, 이러한 사회해체와 병리현상은 도시의 해체된 지역에서 전염된다. 시카고학파 동심원이론에서 영향을 받는다. *아노미이론(긴장이론) ~ 하류계층의 좌절과 분노로부터 범죄가 직접 발생한다. (긴장은 사회적반응) 뒤르켐은 무규범상태를 의미로 급속한 사회변화가 진행되는 시기에 행동의 법칙, 규범이 붕괴되거나 작동하지 않는 사회라고 하였다. 미국의 사회학자 머튼이 뒤르켐의 아노미 이론을 수정 문화적으로 정의된 목적과 이를 성취하기위한 사회적으로 승인된 수단의 문화적 요소가 아노미 상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4. 사회과정이론

경험하는 삶 속에서 가족관계, 집단, 교육경험, 상호작용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관점에 따라 학습이론, 통제이론, 낙인이론으로 구분되는데 특히 낙인이론은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범죄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고, 낙인이론의 시초는 1938년 “범죄와 사회” 라는 책을  쓴 타넨바움 으로부터 비롯되어 범죄나 비행은 집단과 사회와의 갈등의 산물이라고 주장하였다. 후에 휴와 베커에 의해 주지위 개념으로 발전된다. 다양한 사회적 지위는 사람들로부터 잊혀지고 오로지 범죄자라는 사회적 지위만이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연습문제 ~ 레클레스의 봉쇄이론에 의하면 가족은 범행을 차단하는 외적 요인에 해당한다. 사회해체론에 따르면 틈새지역에 사회해체의 정도가 심하다고 한다. 서덜랜드의 차별적 접촉이론은 범죄자와 비범죄자간의 차이를 학습과정의 차이가 아니라 접촉유형의 차이로 본다. 글레이저의 차별적 동일시 이론은 학습이론의 범위를 보다 탄력적이고 광범위하게 확장하였다. 허쉬의 사회유대이론은 누구나 반사회적 행위를 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타르드는 거리의 법칙, 방향의 법칙, 삽입의 법칙 3가지 모방법칙을 주장하였다. 낙인이론은 형사사법기관에 의한 낙인작용이 사회복귀를 결정적으로 저해한다고 본다.    

 

 

제1편 형사정책의 기초

제5강 범죄학의 역사

근대 이전에는 초자연적인 설명방법 이였으나 점차 철학적, 과학적인 사고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고전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사를 전제로 범죄와 형벌의 균형을 강조하였고, 산업혁명 후에는 실증주의가 도입되어 아노미이론, 문화갈등이론, 하위문화이론, 차별적접촉이론, 사회통제이론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범죄원인론과 달리 형성과정에서 낙인이론이 등장 갈등이론으로 발전되었고, 갈등이론은 마르크스주의와 결합하여 급진 범죄학을 형성하게 된다.  

 

1. 서설

지구상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4 사람 가운데 절도범과 공범인 이브와 아담, 그리고 살인자와 피해자인 카인과 아벨 이였다. 인간과 범죄는 처음부터 떨어질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 이였다. 범죄에 관하여 과학적인 연구를 범죄학이라고 한다.

 

2. 근대 이전의 범죄와 형벌

범죄의 개념은 수메르의 함무라비법전(B.C. 1750), 이스라엘의 모세율법(B.C. 1200), 그리고 로마의 12표법(B.C. 451) 등이다.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생각이 시작된 근대이전 영국의 대헌장(1215), 독일의 카롤리나 형법전(1532), 프랑스의 형사칙령(1670), 등이 규율하였지만 18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발전하기 시작되었다.

 

3. 근대 이후 범죄학이론의 발달

새로운 시대와 사상의 도래로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옮겨졌다. 뉴턴(1642~1727), 하비(1578~1657), 갈릴레이(1564~1642), 케플러(1571~1630) 등 의하여 천문학, 물리학, 의학, 생물학 등이 발전 하였고, 이러한 변화의 바탕으로 베카리아(1738~1794)와 벤담(1748~1832)은 고전주의 범죄학을 형성하게 된다. 베카리아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근본 원리로 사회계약론을 신봉하면서 사형이나 고문을 폐지시켰다. 벤담은 베카리아가 주장한 공리주의 이론을 발전시켜 파놉티콘 감옥모델을 제시한다. 이태리학파 롬브로조(1835~1909), 페리(1856~1929), 가로팔로(1852~1934)는 실증주의 범죄학을 도입하였고, 이태리학파 이외에도 사회통계학을 이용하여 범죄문제를 다루려고 했던 케틀레(1796~1874), 게리 학자들이 있었다. 현대의 실증주의 범죄학으로 생물학적, 심리학적 범죄학 이론이 발달하여 유전이론, 체형이론, 모방이론을 주장, 후일 미국의 서덜랜드 등이 주장한 학습이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4. 범죄사회학의 발전

*콩트로부터 시작된 사회학이 범죄학에 도입된 이후 범죄학이론은 한층 깊이와 범위가 심화되었다. 그밖에도 다양한 견해들이 범죄학에 영향을 미친다. 스팬서(1820~1903)다윈의 이론 이용 적자생존과 베버의 문화적, 종교적 세력 사회지배, 또 1887년 퇴니스는 공동사회와 이익사회로 구분하였다. *다양한 연구가운데 범죄학에 가장 큰 공헌을 미친 사회학 창시자 에밀 뒤르켐과 아노미 이론이다. 범죄는 정상적인 것, 불가피한 사회적 행위로 결론 인간본성의 일부라고 하였다. 그의 저서 자살론에서 아노미 의미는 무규범상태, 사회붕괴 개념은 훗날 머튼이 사용한 아노미와는 차이가 있다. 계급사회적 목적과 수단이 분열된 것, 으로 긴장이론의 토대가 된다. *시카고학파와 문화갈등이론은 20세기 초 파크, 버지스, 위드, 시카고대학 사회학과 학자들은 사회붕괴가 사회생태학에 미친 영향에 초점, 사회적인 힘이 범죄를 일으킨다고 결론, 후에 셀린이 발전시켜 문화갈등이론으로 전개 일차적 갈등과 이차적 갈등으로 구분 설명한다. *하위문화이론은 각계각층 공유하는 문화와는 별개로 특정한 집단에서 가치나 규범체계를 의미 코헨(비행소년)1955년과 오린(비행과 기회)1960년 저서에서 차별적 기회론 주장, *학습이론(차별적 접촉이론)이다. 나이많고 경험이 많은 범법자들로부터 범죄를 배운다. 그리고 비행을 통제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다. 전자는 학습이론이고, 후자는 사회통제이론에 해당한다. *다음은 낙인이론이다. 사회적배경에서 가진자(유산자) 가지지못한자(무산자)로 구분 원인보다는 범죄 자체가 형성되는 과정에 관심을 가졌다. 낙인이론이 발전되어 *갈등이론과 급진범죄학이론이 볼드와 퀴니, 터크 등이 있다. 힘이없는 사람들 행위가 범죄로 정의되기 쉽고, 더 사법절차의 대상이 된다. 주장 급기야 마르크스 이론과 결합 급진범죄학이론의 새로운 등장이 있었다. 마르크스(1818~1883) 는 헤겔(1770~1831)의 변증법 이론을 적용하였다. 범죄문제를 크게 다루지는 않았으나 엥겔스(1820~1895)는 “노동자 계급의 조건”에서 조금 다룬다.

*전체요약하면 고전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제로 범죄를 통제해야한다. 대표학자는 베카리아, 벤담 이다. 실증주의는  결정론을 전제로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관찰과 측정을 통해 문제해결, 대표학자는 이태리학파 롬브로조, 페리, 가로팔로 이다. 생물학적 범죄이론은 유전이론과 체형이론으로 전자는 가계연구, 후자는 체형에 관한 연구다. 한편 심리학적 범죄학이론은 지능, 인성, 학습 등 정신적인 면 고링과 타르드 그리고 범죄사회학이론으로 뒤르켐의 아노미이론과 차별적기회이론, 차별적접촉이론, 사회통제이론, 낙인이론, 갈등이론, 급진범죄학 등 다양한 분야로 발전된다.

*연습문제~가장 고전적인 범죄원인에 대한 설명방법은 영적설명방법 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주의는 공리적인간을 상정하고 있다. 실증주의 연구의 대표적 학파로 이태리학파. 고전주의는 자유의지 인정, 공리주의, 죄와형벌의 균형, 파놉티콘 감옥모델 이다. 고링은 롬브로조의 생물학적 결정론을 부정하였으나 범죄원인을 저지능에 있다고 보았다. 타르드의 심리학적 접근방법을 모방이론이라 하며 이는 미국의 학습이론에 영향을 미쳤다. 유전과 범죄에 관한 연구도 실증주의적 연구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뒤르켐은 범죄가 정상적인것이며 불가피한 사회적 행위라고 하였다. 서덜랜드 차별적 접촉이론에 대한 설명 ~ 범죄자와 접촉이 있다고 바로 학습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행위를 학습하는데에서 비롯된다. 정상적으로 학습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제2편 범죄원인론)

고전주의 범죄학파는 계몽사상과 인도주의에 입각한 19세기 자유주의적 범죄학파를 말한다. 형법개혁운동의 대표적인 학자는 베카리아, 포이어바흐, 등이고 감옥개량운동의 대표자는 하워드

 

제6강 범죄학이론1-고전주의학파

1. 서설

인도주의적 형사정책은 하나는 형벌의 완화를 주장 형법개혁운동이요, 다른 하나는 행형시설로서 감옥개량운동이다. 전자는 베카리아, 벤담, 포이어바흐 등이고, 후자는 하워드

 

2. 인도주의적 형사정책

*형법개혁운동 ~ 베카리아(1738~1794)이탈리아 학자로서 가혹한 형벌제도의 개혁 및 완화 주장, 벤담(1748~1832) 영국의 공리주의 사상은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 기치로 범죄와 형벌의 균형을 주장하였고, 파놉티콘형 교도소 구상. 페스탈로치(1745~1827) 저서 입법과 영아살해를 통해 교육사상을 강조, 내적교육, 사회교육, 직업교육을 강조. 포이어바흐(1775~1833) 형법교과서에서 형사정책 이라는 용어 처음사용하였다. 루소의 계몽사상과 칸트의 관념론 철학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벤담의 공리주의 색채도 띠고 있었다. 심리강제설은 쾌락주의에 기초하여 전개되고 있다.

*감옥개량운동 ~ 하워드(1776~1790) 개몽철학적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영국등 유럽의  감옥을 답사 실태파악 감옥에서 형벌을 집행하는 목적은 노동습관을 교육시키는데 있음을 강조하고, 근대적 교도소 설립을 위하여 교도소법을 기초하여  독거감옥이 설립되었다.  

 

3. 고전학파의 형벌이론과 범죄이론

범죄학의 창시자라고 하는 베카리아가 가장 효과적인 범죄예방정책은 교육제도이고, 형벌의 근본목적은 심리강제설을 기초로 예방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와 달리 고전주의 형법학자들은 형벌이론을 응보형주의의 입장과 객관주의 범죄이론으로 구분된다.

*전체요약 ~ 고전주의 범죄학파는 인도주의, 자유주의적 경향을 가진 학파로서 형법개혁운동과 감옥개량운동에 관심. 고전주의학파는 전근대적인 죄형천단주의 내지 규문절차와 결별하고, 자유의지를 가진 추상적인 인격인을 전제로 한 죄형법정주의와 탄핵주의를 그 기조로 하고 있다. 베카리아는 사형폐지론과 죄형균형론 등을 주장. 포이어바흐는 심리강제설을 바탕으로 일반예방주의를 강조 죄형법정주의 사상의 토대를 이루었다.

*연습문제 ~ 고전주의학파는 형법개혁운동, 감옥개량운동, 인도주의 형사정책 이다. 고전주의 범죄학자는 베카리아, 벤담, 포이어바흐 이다. 벤담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파놉티콘형, 범죄행위는 학습된 행위 주장. 페스탈로치 교육형사상은 리프만, 란자, 살다나 관계있다.

 

제7강 범좌학이론2-실증주의학파

실증주의학파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의거 범죄인을 실증적으로 연구 범죄원인을 규명하고, 범죄방지대책을 강구한 형사정책학파이다.  선구자는 이탈리아의 롬브로조 목적형사상과 사회행위를 주장, 특별예방주의를 강조하고, 범죄이론에 있어서 주관주의의 입장에 있다.

1. 서설

*실증주의적 형사정책 ~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됨에 따라 범죄가 격증하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전통적인 고전학파 이론에 대해 법리적으로 재검토를 시도한 학파가 등장 실증주의학파, 형사정책학파, 근대학파라고 부른다. 롬브로즈, 페리, 가로팔로 등 이탈리아 출신인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고, 리스트 범죄사회학파에 의해 확립되어 그 후 리프만과 란자, 살다나에 의해 교육형론으로 개선 발전했다. 형벌이론으로는 특별예방주의를 강조하고, 범죄이론은 주관주의 입장이다.

*연혁 ~ 범죄현상에 대한 통계적 연구가 1805년 영국에서 처음 시도된 후 1826년 프랑스 게리 본격적 연구가 이루어져 통계학의 아버지 케틀레 등 제도학파에 이르러 종전의 개별적현상이 아닌 사회집단현상으로서의 범죄의 특성을 강조 과학적 범죄연구 시도.

 

2. 현대적 형사정책학파

현대 형사정책학의 선구자는 일반적으로 이탈리아의 롬브로조라고 한다. *이탈리아학파로 롬브로조 외 페리, 가로팔로 가 있다. 그리고 *프랑스학파로 라카사뉴, 타르드, 뒤르켐. *독일학파는 리스트, 아사펜부르크. *오스트리아학파로 그로스, 렌츠, 젤리히 등이다.

3. 형벌이론과 범죄이론

*형벌이론 ~ 목적형주의, 특별예방주의로 구분된다. 실증주의학파 형벌이론은 형벌의 목적을 강조하는데 있다. 즉 형벌은 범죄로부터 사회를 방위하고 보전하려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고, 특별예방주의는 고전학파의 일반예방주의가 특별한 사람을 대상으로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려는 특별예방을 강조하고 있다.

*범죄이론 ~ 주관주의와 연결된 실증주의학파의 형사정책은 형벌의 대상은 범죄사실이 아니라 범죄인이 되어야 하고 객관적 사실보다는 주관적인 행위자의 반사회적, 악성, 위험성에 따라 경중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이론.

*전체요약 ~ 고전실증주의학파는 범죄인을 실증적으로 연구하여 범죄원인을 규명하고 방지대책을 강구 사회방위와 특별예방이라는 형사정책적 방향을 제시한다. 롬브로조 등의 이탈리아학파는 범죄의 주된 원인을 유전적 소질에 두고 연구, 특히 페리는 사회적 환경도 강조 의사결정론과 형벌대용물로 보안처분을 주장하였다. 타르드의 모방의 법칙은 거리의 법칙, 방향의 법칙, 삽입의 법칙으로 삼분 미국의 학습이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리스트는 특별예방적 관점에서 범죄인을 반사회성에 따라 분류하고 형벌은 사회적 위험성에 따라 개별화 할것을 주장하였다. 특별예방주의는 이탈리아 롬브로조 등의 범죄인류학파에서 비롯되어 리스트의 목적형사상에서 강조되고 리프만 등의 교육형주의로 이어지는데 결국 사회방위라는 목적형사상을 강조한 것이다.

*연습문제 ~ 범죄인을 자연범과 법정범으로 구별한 학자는 가로팔로. 프랑스학파가 주장한 내용은 범죄원인으로서의 경제적 사정, 사회적 접촉과정을 통한 모방심리, 사회문화구조상의 모순에 기인한 자살. 독일학파 리스트와 관계 있는 것은 마르부르그 강령, 형법의 개별화, 국제형사학협회   

 

제8강 범죄학이론3-범죄사회학파

범죄사회학은 범죄의 원인을 개인의 소질이나 특성이 아닌 환경에서 찾으려는 입장이다. 범죄사회학은 사회구조이론과 사회과정이론으로 나누고, 사회구조이론은 사회구조 자체가 범죄를 유발하는 요인을 내재시키고 있다고 보는 관점으로 사회해체론, 긴장이론, 문화비행이론 등이다. 사회과정이론은 범죄행동을 학습하는 것이 범죄를 유발한다고 보는 관점이며, 이에는 학습이론, 통제이론, 낙인이론, 등이다.

1. 범죄사회학의 대두

범죄의 원인이 개인의 소질이나 특성이 아니라 개인이 처해있는 환경에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 대한 연구가 20세기 초 시카고대학의 사회학부에 소속된 파크(1864~1944), 버제스(1886~1966), 워드(1897~1952) 등 시카고학파로 대두되었다.

 

2. 범죄사회학의 분류

거시환경론은 사회적 상태, 경제구조, 문화 등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 광범위한 사회환경에 주목하는데 반하여, 미시환경론은 개인이 처해있는 주변상황에 주목한다. 전자에 해당하는 이론은 사회해체론, 문화전달론, 사회적 긴장이론, 아노미이론, 하위문화이론 등이다. 한편 후자는 학습이론, 통제이론, 낙인이론 등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범죄 사회학을 사회구조이론과 사회과정이론, 갈등이론으로 구분하기도한다. 갈등이론은 사회에 내재하는 다양한 갈등이 범죄를 유발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3. 사회구조이론

경제구조 불평등, 사회계층화가 발생 하류계층에 집중되어 있는 범죄는 관점에 따라 다시 사회해체론, 아노미이론(긴장이론), 문화비행이론(하위문화이론) 등으로 나눈다. *사회해체론 ~ 사회질서가 무너져 사회가 해체되고, 사회의 해체는 가정, 학교, 집단은 비인간화, 이러한 사회해체와 병리현상은 도시의 해체된 지역에서 전염된다. 시카고학파 동심원이론에서 영향을 받는다. *아노미이론(긴장이론) ~ 하류계층의 좌절과 분노로부터 범죄가 직접 발생한다. (긴장은 사회적반응) 뒤르켐은 무규범상태를 의미로 급속한 사회변화가 진행되는 시기에 행동의 법칙, 규범이 붕괴되거나 작동하지 않는 사회라고 하였다. 미국의 사회학자 머튼이 뒤르켐의 아노미 이론을 수정 문화적으로 정의된 목적과 이를 성취하기위한 사회적으로 승인된 수단의 문화적 요소가 아노미 상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4. 사회과정이론

경험하는 삶 속에서 가족관계, 집단, 교육경험, 상호작용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관점에 따라 학습이론, 통제이론, 낙인이론으로 구분되는데 특히 낙인이론은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범죄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고, 낙인이론의 시초는 1938년 “범죄와 사회” 라는 책을  쓴 타넨바움 으로부터 비롯되어 범죄나 비행은 집단과 사회와의 갈등의 산물이라고 주장하였다. 후에 휴와 베커에 의해 주지위 개념으로 발전된다. 다양한 사회적 지위는 사람들로부터 잊혀지고 오로지 범죄자라는 사회적 지위만이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연습문제 ~ 레클레스의 봉쇄이론에 의하면 가족은 범행을 차단하는 외적 요인에 해당한다. 사회해체론에 따르면 틈새지역에 사회해체의 정도가 심하다고 한다. 서덜랜드의 차별적 접촉이론은 범죄자와 비범죄자간의 차이를 학습과정의 차이가 아니라 접촉유형의 차이로 본다. 글레이저의 차별적 동일시 이론은 학습이론의 범위를 보다 탄력적이고 광범위하게 확장하였다. 허쉬의 사회유대이론은 누구나 반사회적 행위를 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타르드는 거리의 법칙, 방향의 법칙, 삽입의 법칙 3가지 모방법칙을 주장하였다. 낙인이론은 형사사법기관에 의한 낙인작용이 사회복귀를 결정적으로 저해한다고 본다.     

 

 


 

[이 몸이 죽어가서]

사육신의 하나로 단종 복위를 도모하던 성삼문이 거사에 실패한 뒤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지었다는 시조로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정변에 대하여 비분강개하여 사육신으로서 단종 복위에 힘쓰고 있을 무렵에 우의적으로 읊은 시조이다.

'낙락장송'은 자신의 굳은 결의를 표현한 것이며, 종장의 '백설이 만건곤할 제'는

세조의 불의(不義)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세상을 뜻하고 

'낙락장송'과 '백설'은 서로 색채적인 대조를 이루는 상징어이며, 종장의 '독야청청'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민  법

  • 한 번 계약하면 5년 동안 영업할 수 있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보호 대상 영세상인 범위가 늘어난다.

    또한 상가 주인이 올릴 수 있는 보증금 한도는 낮아진다.

    법무부는 12일 영세상인 보호를 위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이달 중 입법예고를 마치고 이르면 다음달 중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한 번 가게를 얻으면 5년간 건물주에게 계약을 요구하며 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개정령은 상가 임대료 상한액을 지역별로 △서울 2억4000만원→2억6000만원 △수도권 과밀억제지역 1억9000만원→2억1000만원 △광역시 1억5000만원→1억6000만원 △나머지 지역 1억4000만원→1억5000만원 등으로 조정 확정했다.

    또 지역별로 해당 금액 이하인 상가 주인은 9% 이내에서만 보증금 증액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현행법 증액 제한선(12%)보다 크게 낮아진 수준이다. 상가 임대료는 보증금과 월세를 합산해 '보증금+(월세×100)' 방식으로 계산한다.

    [이재철 기자]
  • 전세금 우선변제 범위 내달부터 확대
 
     
       
         
           
               
                 
                  • 법무부, 시행령 입법예고 계획

                    이르면 오는 7월부터 경매 등으로 임대주택의 소유권이 바뀔 경우 전세금에 대해 우선변제를 받는 임차인 범위가 확대된다.

                    또 상가 임차인이 임대차 계약 연장을 요구할 수 있는 보증금 상한액이 인상되고 보증금 증액한도가 낮춰지는 등 영세 임차인에 대한 보호가 강화된다.

                    법무부는 12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주택 및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우선변제를 받는 전세금 기준은 ▦수도권 과밀억제지역은 현행 4,000만원 이하에서 6,000만원 이하로 ▦광역시는 3,500만원 이하에서 5,000만원 이하로 ▦그밖의 지역은 3,000만원 이하에서 4,000만원 이하로 각각 상향된다.

                    과밀억제지역이란 인구와 산업이 지나치게 집중됐거나 그러한 우려가 있어 정비할 필요가 있는 지역으로 서울시ㆍ강화군을 제외한 인천광역시ㆍ의정부시 등 수도권 주요 도시가 포함된다.

                    이와 함께 우선 변제금의 액수도 ▦수도권 과밀억제구역은 1,600만원에서 2,000만원 ▦광역시는 1,400만원에서 1,700만원 ▦나머지는 1,200만원에서 1,400만원으로 인상된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주택임대차보호법의 혜택을 받는 가구 수는 현행보다 25만가구 많은 400만가구로 늘어날 전망이다.

                    법무부는 서민임차인 보호를 위해 우선변제 기준액을 지난 7년간의 전세가격 평균 상승률(19.2%)을 다소 웃도는 수준으로 인상했다”고 설명했다.

                    영세한 임차 상가의 영업권 보장범위도 소폭 확대된다.

                    개정안은 임대계약 후 5년간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보증금의 상한액을 ▦서울 2억4,000만원에서 2억6,000만원 ▦수도권 과밀억제지역 1억9,000만원에서 2억1,000만원 ▦광역시 1억5,000만원에서 1억6,000만원 ▦기타 1억4,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각각 올렸다. 또 보증금의 증액 한도도 현재의 연 12%에서 9%로 인하된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금리 인하 등 경제상황의 변화를 감안해 증액 한도를 3%포인트 인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는 대로 이번 개정안을 국무회의에 상정해 이르면 다음달 중 시행할 예정이다.

                   

                   

                  한국사의 이해 개요

                   2010.3.10 고홍인 수록

                  <제1장 원시사회와 고조선>

                  지구상에 인류가 등장한 것은 2, 3백만년 전부터라고 한다. 기록의 역사는 3, 4천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전을 원시시대 고고학적 유적유물을 통하여 알아볼 수 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로 구분 농경과 청동기 문화에 바탕을 둔 최초의 고대국가는 고조선 이다. 그 후 위만조선으로 교체되었고 고조선은 한의 침략에 치열하게 싸우다가 서기전 108년 왕검성 함락으로 역사에서 사라진다.

                   

                  <제2장 삼국>

                  청동기에 이어 철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고대국가로 발전한 고구려, 백제, 신라는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우리민족의 자주성 확립과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제3장 통일신라와 발해>

                  고구려 옛땅에 고구려 장수였던 대조영이 발해를 세웠다. 698년에 건국한 발해는 926년에 멸망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통일신라와 비슷한 남북국 시대라 하며 신라는 제도와 조직을 재정비하여 불교문화를 바탕으로 유지하였다.

                   

                  <제4장 고려사회의 성립과 발전>

                  고구려 계승자라하며 북진정책으로 거란과 여진에 대해 강경하고 송과는 우호관계를 맺었다. 불교는 국교로 사회문화에 영향을 바탕으로 유교정치이념에 의한 통치가 강조되어 유학과 한문학이 학문적으로 발전하였다.

                   

                  <제5장 고려후기 사회변화>

                  13세기에 몽고와 30년에 걸친 긴 전쟁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다가 결국 부마국으로 전락 굴복하였다. 원간섭기에 권문세족은 원과 결탁 권력을 유지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방향으로 개혁이 시도되었다.

                   

                  <제6장 조선사회 성립과 발전>

                  신흥 사대부 계층과 신흥 무장세력이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결집됨으로 성리학적 정치이념 경국대전 반포를 통해 일단락 되었다. 성리학은 왕을 비롯 일반민의 생활규범에 까지 확대되었다. 세종대 한글창제로 우리문화의 기반이 사회변화와 문화발전으로 시도되었다.

                   

                  <제7장 조선전기 사회변화와 외세침략>

                  조선 성리학의 확립으로 학파가 형성되고 훈척세력과 사림파가 대립 사화가 거듭되었다.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여 민심이 이반 두차례 전란으로 엄청난 백성들의 고통을 초래하게 되었다.

                   

                  <제8장 조선후기 경제발전과 사회동향>

                  모든 분야에서 산업이 새롭게 발전하기 시작 사회경제적 변동으로 신분제가 허물어 지고 부세제도가 바뀌면서 대동법, 균역법, 환곡제 등이 시행되었다. 정치에서 당쟁이 격화되어 영, 정조에 탕평책을 통해 극복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제9장 사회모순의 심화와 농민항쟁>

                  17, 18세게에 사회 여러부문의 발전과 변동은 19세게 들어와서 더욱 빨라졌다. 양반중심의 질서와 변화된 봉건체제는 과중한 조세로 민중에 대한 수탈로 연결 세도정권은 사회변혁의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1811년 평안도 농민전쟁과 1862년 삼남을 중심으로 농민항쟁이 터져나왔다.

                   

                  <제10장 개항과 근대 변혁운동>

                  19세기 후반 세계 곳곳에서 식민지 쟁탈 열강의강제개항과 동시에위기에 대응하는 우리민족의 움직임은 척사, 개화, 농민항쟁 등 세갈래의 흐름으로 나타났다. 궁극적으로 척사운동으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반침략적 민족운동의 성격을 추구하였다. 개화운동은 시대적 흐름으로 알고 봉건제를 개혁 사회개혁운동으로 갑신개혁(1884) 갑오개혁(1894) 이어졌으며 그 후 광무개혁, 독립협회운동과 문화개몽운동으로 계승되었다. 위로부터 근대화 운동이었다. 개항 뒤 반봉건 농민항쟁은 1894년 농민전쟁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아래로부터 사회변혁운동이자 민족중심의 반침략 민족운동이었다.

                   

                  <제11장 대한제국기 열강의 경제침탈과 개혁운동>

                  1894년 농민전쟁이 좌절된 후 제국주의 열강이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구미열강과 일본의 경제 이권침탈은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위로부터 근대적 개혁을 추진 위기를 극복하려 하였고 농민전쟁 뒤에도 민중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참여 폭도 넓어졌다.

                   

                  <제12장 보호조약의 체결과 국권회복운동>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영국, 미국 등과 맺은 군사동맹을 바탕으로 1905년 11월 을사조약을 강제로 맺었다. 통감부를 설치 한일 병합 식민지화 정책을 펼쳐나갔다. 나라를 빼앗긴 뒤에도 독립군 활동으로 이어져 나갔다.

                   

                  <제13장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1910년대 무단통치실시 삼천리 강토를 창살없는 감옥으로 민중은 노예로 억압과 수탈에 1919년 3.1운동으로 폭발하였다. 밖으로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 뒤에 밀려오는 민족자결주의 라는 세계개조의 기운에 고조된 3.1운동은 우리민족의 해방운동이었다.

                   

                  <제14장 일제의 기만적 문화정치와 민족해방운동>

                  3.1운동으로 조선민족의 강력한 저항을 경험한 일제는 무단정치를 철폐하고 이른 바 문화정치를 실시하였다. 조선민족을 분열시키고 교묘하게 억압 수탈하려는 기만적 정책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엄청난 전시초과 이윤을 벌어들이고 식민지 자본주의 기초를 위한 산미증산 계획의 추진과 회사령 철폐는 노동자와 농민의 항일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게 이른다. 1925년 4월 조선공산당이 창립되어 1927년 일제에 비타협적인 민족주의 세력과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를 결성하게 된다.

                   

                  <제15장 전시하 일제의 수탈과 항일무장 투쟁>

                  일제는 1929년 경제공항에서 벗어나려고 "대동공영"의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침략전쟁을 추진해 나갔다. 식민지 조선은 전시체제로 침략전쟁을 지원하는 병참기지로 전한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 뒤 일제의 극악한 탄압에 투쟁방법을 모색하였고 1930년대에 중국과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만주 동북항일연군, 중국화북에서 조선의용군, 중경에서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이 조직되어 마지막 항전

                   

                  <제16장 해방과 민족의 분단>

                  1945년 8월 15일 연합군의 승리로 불완전한 해방으로 1945년 12월 말에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이 발표되자 한국문제가 유엔에 넘어가면서 민족의 분단국가 수립이 더욱 현실화 되었다. 1948년 5.10단독선거에 반대 제주도에서 이른 바 4.3봉기가 일어났다.

                   

                  <제17장 분단체제의 고착화와 4월 혁명>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500만명의 인명피해와 산업시설이 파괴되어 분단이 더욱 고착화 되었다.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부패만연과 미국원조액이 줄어들게되어 위기를 맞게되었고 3.15부정선거 규탄시위에서 시작되어 4월혁명으로 민중의 요구가 분출되는 계기가 되었으나 미완의 혁명이 되고 말았다.

                   

                  <제18장 군부정권과 산업 근대화>

                  1960년~1970년대군부독제와 유신체제 그리고 경제개발로 특징되는 시기였다. 독점개발은 국가의 보호아래 차관과 각종 특혜를 받으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억압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을 무마시켜 나간 것이다. 처음에는 생존권 옹호차원에서 시작된 민중의 사회운동은 차츰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유신체제로 억압하기에 이르게 되고 마침내 유신체제는 안으로부터 무너져 갔다. 자중지란도 순기능으로 승화되는 계기가 있다.

                   

                  <제19장 새로운 국제질서와 민주주의 발전>

                  1980년대 냉전체제 해체라는 세계사적 전환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국제질서가 재편되면서 세계는 경제문제에서 국경없는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의 고도성장 만큼 환경오염과 빈부격차, 지역이기주의 만연 등 심각환 사회문제를 낳았다. 1980년대는 신군부의 등장으로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5공화국 독재체제를 종식시키고 사회민주화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어서 6공화국에서도 국민들의 정치적 각성과 역량은 계속 성장하여 5.18광주사태 진상규명과 5공비리청산을 비롯 사회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압력은 지속되었다.

                   

                  <제20장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형성과 변화>

                  1980년대 냉전체제 해체로 국재체제가 편되는 상황을 극복해야하는 과제속에서 우리식 사회주의를 주장하면서 부분적인 개혁과 개방을 선택하였으나 1994년 김일성 사망 후로 경제적 침체 등 정치 경제적으로 여전히 어려운 난관에 부딪혀 있다.

                   

                   <이자겸 가문과 왕실>

                  ↓↑혼인관계

                   

                   

                  11대 문종

                   

                   

                   

                   

                   

                  ↓↑

                   

                   

                   

                  이자연---

                  인예태후

                  →(이자겸 고모)

                   

                   

                   

                  ↓↑

                   

                   

                   

                   

                  인경현비

                  →(이자겸 고모)

                   

                   

                   

                   

                   

                   

                   

                  인절현비

                  →(이자겸 고모)

                   

                   

                   

                   

                  13대 선종

                   

                   

                   

                   

                  ↓↑

                   

                   

                   

                  이정---

                  원신궁주(이자겸 누이)

                  14대 헌종(사숙태후 子)

                   

                   

                   

                  ↓↑

                   

                   

                   

                  이석---

                  사숙태후(이자겸 누이)

                  16대 예종(인종 아버지)

                  이한----

                   

                   

                   

                  ↓↑

                   

                   

                   

                  이자겸----------

                  문경왕후★(이자겸 딸)

                   

                   

                   

                   

                   

                   

                   

                  이호---

                   

                  연덕궁주★(이자겸 딸)

                   

                   

                   

                   

                  ↓↑

                   

                   

                   

                   

                  폐비이씨★(이자겸 딸)

                   

                   

                   

                  장경궁주(이자겸 누이)

                  ↓↑

                   

                   

                   

                  ↓↑

                  ↓↑

                   

                   

                   

                  12대 순종

                  17대 인종(이모와 결혼)

                   

                   

                   

                  ↓↑

                   

                   

                   

                   

                  정신현비

                   

                   

                  이자상---

                  이예---

                   

                   

                   

                   

                   

                  이공수

                   

                  ※이자겸 고모3명이 11대 문종왕비가 되고 이자겸 딸3명중 첫째가 16대 예종왕비가되고 셋째와 넷째가 17대 인종왕비이자 인종 이모가 되기도 한다. (죽일놈들 나라꼴이 망할 수밖에 없지! 왕이 허수아비꼴)

                   

                  (참고문헌)

                  ☞ 송찬섭.홍순권 공저 / 한국사의 이해, /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 2005년도

                   

                  세계의 정치와 경제

                  2010.3.26 고홍인 수록

                  <국가중심적 패러다임의 기원과 특징(고전적 중상주의)>

                  ★1588.7.21~29일 까지 132척의 에스파냐 무적함대는 영국해군에 의해 대파되었고 16세기 획을 긋는 식민지 제국의 왕관이 에스파냐에서 영국으로 옮겨가 이제 영국이 세계의 패권국가로 등장 신호

                  ★네델란드는 1660~1675까지 영국의 지배아래 프랑스와 영국의 군사적 갈등은 1815워터루 전투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를 중상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세계 정치경제이론들 중 하나이다. 중상주의는 15~18세기 까지 유럽에서 근대 민족주의국가의 태동과 밀접한 관련

                  ★중상주의 정책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무력함과 빈곤의 악순환은 결국 선순환의 제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

                  ★초기 중상주의 특징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수출증진과 수입제한을 통해 금,은화의 축적을 도모하는 것이다. 둘째 국고재정을 충실히 하여 군비강화를 꾀할 것이며 셋째 군사력의 모체가 될 공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근대 초기의 경제적 민족주의는 16~18세기의 세계정치경제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통적 중상주의는 특징이 변하긴 하였어도 오늘날 까지 본질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와 경제민족주의>

                  ★18세기 이후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룩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고 있었다. 영국 이외의 국가들은 식료와 제조원료들을 영국에 공급하고 완제품을 수입 독립적 주권을 염려하였고 영국의 정책에 맞서기 위하여 경제민족주의 정책을 채택, 독일에서 추방 미국으로 망명하여 해밀턴의 경제민족주의 정책에 접하게 된다.

                  ★리스트는 산업혁명이후 세계경제의 패권자로서 등장할 영국의 공격적 자유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스미스 주장에 반기를 들고 영국에 대한 원료 공급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자유방임주의를 배척했다.

                  ★이러한 과정은 국가이익이 국제무대에서 상호충돌한 과정을 수반했으며 경제민족주의 성격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 제국주의 시대 전환이(해외경제권을 개발한 것이) 결국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으로 경제민주주의가 가져온 국제적 경쟁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중상주의>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로 등장한 미국은 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에 착수했다. 세계를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절대적 이득보다 상대적 이득에 훨씬 민감한 무역관계로 고전적 중상주의 정책을 폄하하는 국제적인 자유주의 정치경제 환경을 추구한다. 따라서 자원의 상호의존 심화 위협으로 자급자족이야말로 민족국가경재를 안전하게 할 수 있다. 이익이 되지 않으면 보호주의로 돌아서는 실용주의적 중상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opec로부터 석유수입에 의존하던 서구 국가들을 긴장하여 미국의 카터는 석유의존탈피 노력이 도덕적으로 전쟁과 맞먹는 것이라고 까지 언급

                  <세계화와 국가중심의 패러다임>

                  ★중상주의자들은 상호의존을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 경제적 효율성이 안보를 보호할 국가의 능력을 위협한다는 측면에서 세계정치경제의 근본적 딜레마를 가져온다. 즉 국가는 상호연결되어 가는 국제체제에 대항할 힘을 상실해 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중상주의의 미래>

                  ★중상주의는 가장 오래된 이념으로 여전히 학자들과 정치인들 사이에 위력을 떨치고 있다. 심지어 자유무역을 옹호했던 19세기 영국과 20세기 미국 또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신중상주의등장은 국가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한 자유무역 선호하며 그렇지 않으면 보호주의로 돌아선다. 실용주의적 중상주의는 삶의 현실이며 세계화의 효율성을 촉진시키면서 동시에 파괴적인 효과를 제한할 방법은 없을까? 과제가 오늘날 곡가중상주의자의 입장이다.

                  <고전적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의 기원>

                  ★18세기 프랑스 경제학자 케네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비판 "그대로 놓아두라"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 메아리는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영국의 애덤 스미스의 저작에서 울려 퍼졌다. 스미스는 이를 보이지 않은 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스미스가 반대한 국가는  국가의 권력이 부를 획득하는데 사용되고 부가 더 많은 권력을 획득할 때 국가이익은 최대한 보장된다는 18세기 중상주의 국가였다.

                  ★비록 자유주의는 개인을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로 간주하지만 교환을 통해 얻어지는 상호이익이 결국 공적인 이익으로 연결된다. 자유주의는 또한 국가의 가학적인 측면을 비판한다. 개인적 자유의 옹호와 국가권위의 남용에 대한 경고라는 사고는 자유주의 근본적 가치

                  ★자유주의 관점을 자유방임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자유로운 개인이야말로 최상의 조건이며 국가의 역할을 법체계, 국방, 화폐주조, 등 공적인 업무로 제한된다.

                  ★국제무역은 상호이익을 주는 영역인 것이다. 부와 권력을 향한 파괴적인 경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미스의 예를 빌리자면 가정의 가장은 자신이 다른 곳에서 구입하는 것 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들 경우 물건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복점주인은 신발까게에서 신발을 구입한다. 또한 신발가게 주인은 옷가게에서 구입할 때 합리적인 경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유무역에 대한 스미스의 관점은 리카도(1772~1823)비교우위론으로 체계화 되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고전적 자유주의의 초석) 따라서 세계의 국가들은 분열되지 않고 하나의 보편적 사회의 일부분이 된다. 자연상태에서 국가들은 전쟁이 필요없으며 개인들은 무자비한 갈등속에서 있을 필요가 없게된다.

                  ★비교우위의 논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모든 국가가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산업에 집중하게 된다면 세계의 생산과 소득은 증가할 것이고 따라서 모든 사람의 삶의 수준도 향상될 것이다.

                  <자유주의의 진화(존스튜어트 밀)>

                  ★자유주의 지식발전사에서 중요한 사람중의 하나로 밀을 들 수 있다. (1806~1873)밀의 정치경제학은 고전적 자유주의 집대성이다. 독창적이고 새로운 이론을 수립하지는 않았으나 특유의 색체가 더해 졌다. 단순히 부의 축적보다는 도덕적 정신적 진보의 철학을 원했다. 생산과 분배에서 자유방임의 법칙을 영구불변한 것이 아니라 부의 분배는 사회적 법률에 의해서 변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말해 자유방임의 생산이 가져오는 사회적 병폐현상을 국가가 나서서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진보를 성취하기 위하여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역할을 국가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밀은 런던 출생, 공리주의 철학가이자 자유주의 정치개혁가로서 고전적 자유주의를 집대성, 언제 정부의 보이는 손이 정당화 될 수 있으며 시장이 보이지 않은 손을 대체하거나 보조할 수 있는가? 정부는 언제 어떻게 어디까지 행동해야하는가? 논쟁의 분야이다.

                  <존 케인스와 고전적 자유주의의 수정>

                  ★스미스의 정신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보이지 않은 손을 보다 좁은 영역에서 국한시키며 더많은 건설적인 국가역할을 강조 방향으로 시장과 국가를 결합시킨다. 제1차 세계대전과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통한 소련의 등장은 케인스에게 마르크스주의 혹은 공산주의적 관점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중상주의와 공산주의를 모두 거부한 케인스는 불가피 자유주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극단적인 자유주의가 대표하는 시장에 대한 숭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이러한 신념은 1930년대의 대공황으로부터의 경험 즉 보이지 않은 손이 때로는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증거로 뒷받침 되었다. 공황이 유효수요 부족 때문에 발생결론을 내렸다. 유효수요 창출은 국가에 맞겨져야 하고 이를 위해 국가는 완전고용을 목표로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줌으로서 소득을 증대시키고 이는 다시 소비의 증대를 가져오고 결국 자본가의 투자를 증대시키게 되어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방임의 종언을 강연하고 허구임을 꼬집었다. 이기적인 개인이 비록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집단적인 결과는 비합리적이고 파괴적일 수 있으며 이 경우 보이지 않은 손은 명백히 실패한다고 보았다. 근검의 역설에서 실업상태 한사람이 내년즈음에 고용을 예상한다고 하자 미래소득 불확실성 때문에 비상시를 대비하여 돈을 적게쓰고 저축, 예비자금을 마련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고 가정해보자. 모든 사람이 지출을 줄일 경우 구매가 줄어들고 생산이 감소하고 필요노동력이줄어들어 결국 소득이 감소하게된다. 개인의 합리적 행위가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경기후퇴와 실업문제를 가져오는 것이다.

                  ★케인스가 옹호했던 국가의 긍정적 역할 즉 물가와 실업을 조절하고 경제 성장을 장려 정책들을 독자적으로 실행할 수 있게했다. 강력한 시장과 강력한 국가간 일종의 타협 배태된 자유주의였다. (소비는 미덕이다)

                  <신자유주의(고전적 자유주의 부활)>

                  ★시장의 실패를 국가의 개입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캐인스의 자유주의 해석은 1950~1970년 까지 복지국가 모델로 황금기를 구가했다.

                  ★케인스 주의자들은 심지어 사회주의자들이 옹호했던 강력한 국가의 역할과 결합되었다. 다양한 시장분야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전세계의 높은 실업률, 인플레이션, 경기후퇴로 케인스를 불신하게 되었다.

                  ★고전적 자유주의 국가로 시장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미국의 밀턴 프리드먼 주도 개인적 자유를 보장하는 최선의 대안이라는 스미스의 시장주의를 계승했다. 안보와 자유에 대한 유일한 길은 국가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이며 시장의 자생적 질서가  개인들에게 제공하는 기회에 의존해야한다고 주장 국가가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자생적 시장질서가 유지되는 규범을 역설하고 완전경쟁시장은 현실세계에서 존재할 수 없는 허구적인 것이라고도 스미스 이론에서 처럼 색체를 달리했다. 효율성은 국부의 원천이다.

                  <대처, 레이건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의 주요 실천가는 영국수상 대처와 미국대통령 레이건이었다. 먼저 대처정부는 국민건강보험을 민간에 대체하고 민영화 조치가 다음이었다. 그리고 실업정책 적극활용, 한편 레이건은 시장에 대한 탈규제 조치로 나타났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와 더블어 세계 곳곳에서 자유주의적 정책의 부활을 가져왔다. 특히 규제완화와 민영화는 1990년대 세계로 널리 보급되어 일반화 되었다.

                  <현대 자유주의 전망>

                  ★공산주의 붕괴와 자유주의와 ㅅ장의 확산은 우리로 하여금 영구적인 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끔 한다. 그러나 현대 자유주의는 과거 형태에 비하여 온갖 종류의 무늬와 변형을 지니고 있다. 즉 현대의 자유주의는 스미스와 리카도의 자유주의적 관점과 레이건과 대처의 보수주의적 사고 그리고 케인스의 진보주의적 관점이 병존하는 ㄳ으로 볼 수 잇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민줒의는 놀라우리만큼 허약한 제도이다. 세계도처에서 우리는 종족, 민족, 인종, 종교적 차이에 기반을 둔 갈등과 분열을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두려움과 증오의 땅엣 스미스의 보이지 않은 손이 자유에로의 길을 열 수 있을런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공산주의 붕괴에도 불구 마르크스는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마르크스 역사와 계급투쟁>

                  ★마르크스는 1818~1883 세계정치경제학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날 까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독일 부유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라인신문 편집자로활동중 추방 영국 런던에서 엥겔스의 도움을 받아 생활했다. 그의 저서 자본론은 산업혁명이 진행중이던 영국의 제조공장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루어 졌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근본적으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대응과정에 의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생산력은 일반적으로 노동력과 생산수단의 결합을 통해 결정된다. 역사적 유물론은 역사의 진화 혹은 발전은 바로 한 사회의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 혹은 갈등을 통해 이루어 진다는 틀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생산기술의 발전으로 필요한 노동으 양은 줄어들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보다 많은 여가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기업이나 소유주들은  보다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의 여가시간을 되도록 인정하려 않으려 한다. 주5일제 근무제 대립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좋은 예이다. 노사관계가 갈등의 국면으로 진입하여 결국 사회적 갈등으로 확장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에게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는 평화적이고 상호 혜택을 줄 수 있는 관계가 형성 가능한데 반하여 마르크스는 일방적인 관계를 지닐 뿐이라고 보았다. 측취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대중을 빈곤과 비탄에 빠지게 하여 바로 여기서 혁명이 시작되고 자본주의 과정 자체가 자신의 무덤을 파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자본주의 위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다음의3가지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고 보았다. 첫째는 이윤율 저하의 법칙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절약적인 새 기술에  대한 투자를 통하여 효율성과 생산성을 증대시키려 한다. 실업이 증가 이윤율은 감소,  뚤째는 불균형의 법칙이다. 과잉생산은 불황과 경제파동을 야기하고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야기한다. 결국 사회불안 증대 혁명과 변화의 가능성, 셋째 집중의 법칙이다. 결국 경기침체의 장기적인 경향은 폭력적 혁명을 기도하게 된다. 계급투쟁과 혁명유발 이러한 측면에서 마르크스는 현대 구조주의 이론으 기원이 되었다.

                  <레닌과 제국주의>

                  레닌(1870~1924)은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로서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의 창설자이다. 마르크스의 생산양식과 계급투쟁의 개념을 이용하여 생산과 금융분야에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한 빈곤지역과 저개발국에로의 침투라는 자본주의 국제적 효과를 설명하는 세계정치경제의 관점을 개발했다. 그의 저서 "제국주의" 자본주의 최후단계의 가장 유명한 요약이라 하겠다. 레닌은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마르크스 앞에서 언급한 자본주의 소멸의 세가지 법칙을 해외 식민지 개척을 통해 모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는  세계를 균등하게 발전시키지 않은다는데 있다. 국력의 차이가 결국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국제정치경제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구조주의 현대이론들>

                  ★구조주의 근본적인 개념은 경제구조가 부와 권력의 분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현대구조주의 이론의대표라 할 수 있는 종속이론과 세계체제론을 살펴보자. 종속이론은 선진자본주의 팽창과 침투가 저개발국들의 저발전의 발전을 초래한다고 본다. 그릭 세계자본주의 체제가 모든 국가간의 정치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며 자주성이 없다는 것이다.

                  <구조주의 전망>

                  ★20세기의 경제적 보수주의, 자유주의, 구조주의 시대라고 정의되어왔다. 이중 구조주의는 이 시기 세계적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다. 기존 자유주의나 중상주의가 다루지 않았던 계급, 착취, 부와 권력의 분배, 종속, 그리고 자본주의 세계적 양상 등을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가 생산해 내는 불평등과 착취에 대한 도덕적인 비판을 행하는 토대를 제공 결론적으로 오늘날 구조주의 접근법을 네가지 세계정치경제 구조 즉 생산, 금융, 안보, 지식구조 등에서 착취와 제국주의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에서 한 국가의 위상은 그 국가의 생산, 자본, 안보, 자원, 선진기술에 대한 접근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 김명섭, 조성대, 진시원 공저 / 세계의 정치와 경제, /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 2005년도

                   


                   

                   

                  노동법2

                   2010.3.31 고홍인 수록

                  ☞집단적 노사자치는 근로자들의 자주적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이 법적권리로서 존중될 때에만  기능할 수 있다.

                  ☞근로자의 자주적 활동단결, 단체교섭요구, 단체행동 등에 대해 억압, 소극적 용인(방임), 적극적 보호(승인) 단계

                  ☞승인의 단계에서는 민사면책(손배면책), 징계책임 면책 보장, 승인의 배경으로 제1차 세계대전후 러시아 혁명에 대한 대응, 1919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의 등장, 베리사이유 조약의 ILO국제노동 기구 설립등을 들 수 있다.

                  ☞근로삼권의 의의 ~ 헌법 제33조 제1항 자주적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근로삼권 보장

                  ☞현재 근로삼권이 부인되거나 제한되고 있는 근로자의 범주로 공무원, 교원, 주요방위산업체 근로자가 있다.

                  ☞제한의 근거와 비판 ~ 국민전체의 봉사자론, 특별권력관계론, 공공복리론, 대상조치론, 재정민주주의론, 근로조권 법정주의론, 직무성질론 (판례합헌)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는 교원은 초, 중등 교육법에 의한 교원으로 한정

                  ☞노동조합의 기능 ~ 경제적, 공제적(사회보험제도 효시), 정치적

                  ☞적극적 요건(노동조합) ~ 근로자의 경제 사회적 지위향상 도모 목적으로 자주성, 목적성, 단체성

                  ☞소극적 요건 ~ 사용자 이익 대표자, 사용자 원조받은 경우, 공제 수양, 복리사업만을 목적 경우, 근로자 아닌자 가입허용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은자

                  ☞형식적 요건 ~ 설립신고 요구, 신고서에 규약, 접수시 설립

                  ☞조직대상 범위 ~ 직업별, 산업별, 일반, 기업별, 단위, 연합단체, 혼합노조 등으로 구분

                  ☞산별노조 ~ 해고자, 퇴직자, 취업희망자, 등 조합원 자격 부인이 아닌 노동법상 근로자에 해당

                  ☞복수노조 금지 ~ 기존의 기업별 노조들이  연합하여 하나의 산업별 노조 건설 경우 중복된다는 이유로 산업별 노조설립 제한 IOL국제노동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근로자 개념 ~ ①일반론은 종속적인 관계 인정되어야 ②근기법상 임금목적 제공 취업근로자만 ③노조법에서 취업희망자 실업자 등 포함

                  ☞각종 특수 근무형태가 엄격하게 사용종속관계 요구하는 견해에 따르더라도 근로 기준법상,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 케디, 학습지교사, 노조가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은 바도 있다. 산업사회가 발전 고용형태 다양화, 탄력화, 노동시장 확대 등 종전의 노동법에서 예상할 수 없었던 현상들이 전형적인 기업조직 통한 지휘명령이나 보수지급이 명확하지 않은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자 범위 판단함에 무엇보다 외형적인 지휘명령, 보수지급, 근로시간, 규제의 탄력화 이면에 존재하는 사용종속관계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사용자 책임을 면하려는 사용자의 의도가 은폐되고 있고 다양한 고용, 취업 형태의 실정자체가 새로운 이익추구의 수단이 되고 있는 점에 유의할 필요 문제의식이 있다.

                  ☞노동조합 운영의 원칙 ~ ①단결자치의 원칙 ②조합민주주의 ③현행노조법 규정 태도에 대한 평가

                  ☞①총회 ~ 노동조합은 매년1회 이상개최하여야 한다. ②대의원회 ~ 총회에 갈음할 대의원회를 둘 수 있다. 총회에 관한 규정은 대의원회에 준용, 대의원회는 조합원의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에 의하여 선출, 임기는 규약으로 정하되 3년을 초과할 수 없다.

                  ☞①사용자는 단체교섭의무를 진다. 정당하지 않은 경우에는 교섭을 거부하여도 된다. ②단체교섭의 당사자 ~ 단위노조가 산별노조인 경우 개별 사용자는 단위 노조의 대각선 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다. ③연합단체인 노동조합도 단체교섭권을 가진다. 그러나 판례는 근로자와의 근로계약관계가 있는 자만이 단체교섭의 상대방인 사용자로서 인정한다. 종속관계가 존재하지 않은 사용자가 아니므로 교섭거부는 부당행위가 아니다. 상부단체나 제3자에게 위임가능, 교섭단체 당사자로 인정않은 단체임원에게도 사용자는 교섭권한을 위임할 수 있다. (예, 경총)

                  ☞①단체협약은 노사 당사자가 단체교섭에서 합의한 사항을 문서화 한 것을 즉 서면으로 작성하여 쌍방이 서명 날인 ②단체협약에는 2년을 초과하여 유효기간을 정할 수 없다. 초과한 경우 2년으로 한다. ③유효기간 경과후에도 새로운 협약이 체결되지 아니한 때에는 체결될 때 까지 종전협약의 효력을 종속시킨다는 취지를 자동약정이라한다. ④당사자 일방은 해지하고자 하는 날의 6월전에 상대방에게 통고하므로 해지할 수 있다. ⑤하나의 사업장에 상시 사용되는 동종의 근로자 반수 이상이 단체협약의 적용 받게된 때 당해 사업장에 사용되는 다른 동종의 근로자에게 대하여도 적용(비정규 근로자도 포함) ⑥지역단위 효력확장 (지역적 구속력) ~ 하나의 지역에 있어서 종업하는 동종의 근로자 3분의2 이상이 단체협약의 적용받게된 때 직권으로 노동위원회 의결을 얻어 당해지역에서 종업하는 다른 동종의 근로자와  그 사용자에 대하여도 당해 단체협약 적용 결정할 수 있다. (행정관청이 지체없이 공고)

                  ☞정당한 쟁의행위 보장 ~ 사용자는 손배청구 할 수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이나파괴는 정당하지 못하다. 민,형사 책임면제.

                  ☞노동조합에 주도되지 않은 쟁의행위 ~ 노동조합 의사에 반하여 독자적으로 하는 쟁의는 이른 바 산고양이파업 또는 비공인 파업 금지(3년/3천)

                  ☞방산업무 쟁의 금지 위반 5년/5천

                  ☞①정치파업 위법설 ~ 사용자가 처분할 수 있는 범위 벗어나 ②정치파업 적법설~단체행동을 기본권으로 보장 민주주의 확대 ③순수정치 파업~노동법 관련 입법적 요구, 사회보장, 반면에 공해, 파병반대 순수정치파업은 정당목적 될 수 없다. ④동정파업 위법설~사용자에게 처분 권한 없는 사항을 목적으로 하므로 정당성이 없다. ⑤동정파업 적법설~계급적 단결에 기인한 것이므로 적법

                  ☞쟁의행위 절차에 관해 노조법은 조정전치주의, 조합원 찬반 투표.

                  ☞조정 신청후 조정기간(일반10일, 공익사업15일) 또는 연장기간내에 조정이 종료되지 아니하거나 중재회부후 쟁의금지기간(15일) 이내에 중재 이루어지지 아니한 경우 쟁의 할 수 있다. 조정전치주의 위반 1년/1천

                  ☞폭행, 협박, 사용 참가 설득시 3년/3천

                  ☞직장점거 제한 ~ 부분적, 병존적, 점거 판례 다수설 인정, 그러나 점거금지 시설의 직장 점거는 주거침입죄, 퇴거불응죄, 형사처벌

                  ☞①사용자는 직장폐쇄로 임금지급 면하게 된다. ②임금지급 요구 쟁의 금지~2년/2천  ③초과 지급된 임금 반환청구권을 자동채권으로 상계

                  ☞근로자는 쟁의기간중 현행범 외에는 이법 위반을 이유로 구속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다른 법인 형법의 업무 방해죄로 구속될 수 있어 실효성 의문

                  ☞노동관계의 지원 ~ 행정관청에 신고한 자, 정당한 권한 자, 행정관청 등이다. 이외 여타자의 간여, 조종, 선동의 금지 위반시 3년/3천

                  ☞①직장 폐쇄는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대항하는 행위로서 노조법상 인정되는 사용자의 쟁의행위이다. 직장폐쇄는 근로계약관계가 그대로 존속한다는 점에서 집단해고와 구별 ②참가조합원 뿐만아니라 미참가 조합원, 비조합원 등을 대상으로도 임금지급을 면하기 위해서도 할 수 있다. ③사용자는 노동조합이 쟁의개시 이후에만 직장폐쇄할 수 있다. 위반시 1년/1천 ④사전신고~미리 행정관청, 노동위원회에 신고, 위반시 500만원 이하 과태료, 신고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도 직장폐쇄는 성립한다. ⑤쟁의 종료 경우 직장폐쇄도 중지하여야, 쟁의가 일부 사업 부분만 업무저해 가져오는 경우 그 부분에 대하여 폐쇄가 가능할 뿐이며 그 범위 넘어 전면적으로 직장폐쇄할 수 없다.

                  ☞직장폐쇄 효과 ~ 임금지급의무 면제, 사업장으로부터 배제, 근로관계 존속

                  ☞①대체 노동 금지, 도급 하도급 금지, 1년/1천 ②대체 노동금지에서 비조합원, 불참조합원, 본사 및 다른 사업장 근로자 등으로 대체노동 가능, 즉 1997 개정 노동법에서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로 대체노동 허용범위를 확대했다. 그러나 외부 근로자와 신규채용 대체 할 수 없다.

                  ☞복수노조 금지 규정의 역사 ~ ①63.12.7개정시 신설 ②87.11.28 현재와 같은 규정 ③97.3.13 금지규정이 삭제되고 한시적으로 2001.12.31 까지금지규정 존치, ILO 협약제소하여 ILO 이사회에 복수노조 금지규정 삭제 권고안 제출

                  ☞부당 노동행위란  임금지급 체불 경우 근기법상 위법이지만 그것이 노조파괴 등 단결활동 침해 의도가 아니라면 노조법상 부당행위가 아니다. (부당노동행위 금지, 노동위원회의 구제절차, 처벌 등이 있다. 최초 미국의 와그너법에서 법제화) 고용주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나 판례는 근로계약관계 있는 자 만이 단체교섭의 상대방인 사용자로 인정

                  ☞지배 개입에서 노조 전임자에게 급여지원을 2001.3.28 개정 2006 유예하여 현시점에서 부당행위가 아니다.

                  ☞불복절차와 구제명령의 확정 ~ 명령서, 결정서 송달일 10일 이내 중노에 재심을 신청 중노불복시 재심판정서 송달일 15일 이내 행정소송 제기할 수 있다. 피고는 중노위원장이 된다.

                  ☞긴급 이행명령 ~ 1997 개정된 노조법에서 사용자가 행정소송을 제기 경우 확정판결 전이라도 구제명령의 전부 일부 이행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긴급명영 제도 도입 권리구제가 지연되는 것을 막고 있다. 위반시 과태료 500만원 이하 작위명령 불이행시 일수당 50만원 이하

                  ☞부당 노동행위 자체에 대한 처벌 ~ 2년/2천

                  ☞비정규직 노동자 개념 ~ ①근로자 공급사업:자신의 소속노동자를 공급하여 타인에게 사용케 한다. ②근로자 파견사업과 도급 : 위임과 유사한 무명계약 ③용역노동자 : 외부에서 인력만 공급받아서 ④사내 하청:일반 하청과 구분(원청회사 생산시설 이용) ⑤계약직(임시직):일용직, 임시직, 계약직

                  ☞사적 조정, 중재, 임의조정 등으로 노조법은 인정하면서 다만 약간의 제한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절차 경료 쟁의 행위도 긴급조정 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적 중재, 조정 등 사적조정에 의하여 해결 조정 개시일 일반 10일, 공익15일(연장가능)쟁의행위 금지된다.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사적 조정, 중재 의하여 노동쟁의가 해결되지 아니한 경우 노동위원회에 신청할 수 있다.

                  ☞공익사업의 조정 ~ 필수공익사업으로 다시 분류하여 직권중재(강제중재) 인정한다. 개정헌법에서 강제중재는 필수공익사업만

                  ☞긴급조정 ~ 일단 30일간 중지시키고 중노위가 조정담당 조정안되면 강제중재 회부도 가능, 긴급조정이라 한다.(국민경제나 일상생활에 손해 경우)

                  ☞노동부 장관은 긴급조정 결정시 지체없이 당사자에게 통고 공표한다. 공표일 30일 경과 아니하면 쟁의재개할 수 없다. 위반시 2년/2천

                  ☞중노위장의 강제중재 회부 결정은 긴급조정 결정 통고일 15일 이내에 하여야 한다.(공익위원회 의견 청취) 지체없이 중재

                  ☞노동위원회법은 1953년 제정 1963, 1997 전면 개정. 독립성, 전문성, 공정성 제고위한 개정이었다.(행정위원회 및 준사법적 기능)

                  ☞노동위원회는 중앙, 지방, 특별 구분 특별은 선원법상 선원노동위 중노는 서울에, 지방은 각시도에 설치

                  ☞각 10인 이상 30인 이하 범위에서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동수로 한다. 임기3년 연임. 노동위원회 의결로 면직, 해촉 중노장은 대통령이 위촉, 지노장은 중노장이 위촉. 근로자위원은 노동조합이 사용자위원은 사용자 단체가 추천자중에서 위촉. 제척 기피제도 있다.

                   (참고문헌)

                  ☞ 곽노현 저 / 노동법2 /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 2007년도

                   

                   

                  비교법

                   2010.4.5 고홍인 수록

                   ☞세계각국은 자기만의 독특한 문자와 역사를 가지고 살고 있다. 그래서 법문화 또한 민족과 국가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다양한 법체계는 서로 교류되면서 많은 부분 공통점을 갖는 측면도 보여준다. 그래서 일정한 공통된 법의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법체계, 법전통, 법계, 법문화 ~ ①법전통은 한 사회와 정치체가 가지고 있는 법의 본질이나 법의 역할등에 대한 일정한 태도를 뜻하는 개념을 말한다. ②법체계란 협의로는 한 국가의 법규율과 제도들, 광의로는 널리 유사한 법체계를 가진 다수 국가들에 공존하는 법률적 철학과 방법(보통법 체계)을 의미한다. 후자의 광의적 의미는 법계라 할 수 있는데 보통법계 혹은 대륙법계라 한다. 독일법과 프랑스법은  같은 법계에 있기 때문에 공통의 법사상, 법제도, 법의 역할, 법원 등이 존재한다.

                  ☞법전통은법체계를 보다 큰 범주인 버분화와 관련시키는 것이다. 법전통은 법체계를 문화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더욱 광범위한 개념으로 법문화가 있는데 법제도에 관한 사상 가치 기대 입장이다.

                  ☞법계분류 ~ ①언시민족의 법(토착민족의 과거나 현재의 법들) ②고대문화 민족의 법(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법) ③라틴영역의 법(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포루투갈 중남미국가) ④게르만 영역(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칸디나비아 ⑤슬라브 영역법(소련 폴란드 체코 유고 알바니아 루마니아 보가리아 ⑥영미법(영국 미국 아일랜드 쿠바 푸에르토리코 ⑦종교법(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⑧아프리카 아시아법(터키 이란 인도 동남아 국가

                  ☞비교법 ~ ①사회과학 ②공통된 법구조의 일치성을 유지시키고자 ③여러 법체계들간 관계를 연구법의 본질과 법발전의 학문

                  ☞비교법은 법체계라기보다 하나의 연구방법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인정된 비교의 방법은 없다. 윗슨은 비교법에 필요한 접근방법을 역사적 관계 내부적관계 동일모형의 발전이론 등이라고 한다.

                  ☞허그는 비교법의 연구대상을 상호비교 유사점과 상이점 발견, 특정법적 사안에 대한 해결방법을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연구, 상호 다른 법체계에 이르게 된 원인 관계를 탐구, 여러 법체계의 다양한 단계를 비교 연구, 일정 기간과 쳬계에 따라 법진화의 일반적 모형을 발견 탐구

                  ☞로마시대 여러정복지역의 법들 비교결과로 얻어진 산물은 만민법이다.

                  ☞가장 오래된 성문법중 로마의 12동판법에서도  그리스 문화가 로마ㅜㄴ화에 영향을 끼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키케로나 가이우스 같은 로마 법학자들의 문헌에서도 로마인들이 입법위원들을 아테네에서 보내서 그리스 법과 제도를 배워 그것을 로마법의 기초로 했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로마가 대제국이 되었을 때 만민법은 여러 정복지역 법들의 총화로 만들어진 세계법이었다. 400년 경에는 로마법과 모세5경을 종합해서 만든 신법은 비교법의 작품으로서는 가잘 빠른 예이다. 중세기에 로마제국이 붕괴되고 속인법이 제정 각자 나라와 부족법의 적용을 의미한다.

                  ☞비교 법학의 발달 ~ 근대적 의미의 비교법의 발달은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다윈의 생물학에서도 도움, 그리고 카터리지와 로손은 영국의 유명한 비교법학자

                  ☞근대적 의미 비교법이 시작된 것은 19세기 들어서다. 비교법 발단은 1748 몽테스키외의 법의정신이 출판된 때로 그렇지만 라드부르흐는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독일의 형법학자 포이에르바흐 1775-1833 가 근대비교법의 창시자임을 주장

                  ☞포이에르바흐가 1800 발표한 코란의 형법학에 논문을 중시하였다. 특히 진화론자인 다윈의 방법론에 의한 영향이 지대하였다. 영국에서 1861메인의 "고대법"이 전기를 이루었다. 다윈의 "종의기원" 자극을 받아 집필 메인은1869 옥스퍼드에서 역사 비교법학의 초대 교수로 임명되었다.

                  ☞독일의 경우 비교법은 민벅을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제1차 대전후 라벨 1874-1955은 1916 문휀대학에서 비교법 연구소를 창립 초대 소장이었다. 영국에 비해서 미국에서는 비교법 연구가 성황1945튤렌대학 연구소는 연구의 중심이었다.

                  ☞비교법 학문 목적 ~ 법해석 기여, 입법에 기여, 법계수에 기여, 법의 국제적 통일, 법의 일바이론 수립 기여, 법학교육에 기여

                  ☞우리 인류 최초의 성문법들은 문자의 발명과 함께 아시아 문명에서 발생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황화문명, 인더스 문명 등이 각각 자신의 규범을 마련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한편 서구에서는 로마시대 본격적으로 합리적체계를 갖춘 로마법학이 이루어 진다. 중세기를 거쳐 근대 서구에 영향을 미쳐 마침내 우리나라에 까지 밀려오게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성문법들을 소개하시오. ~ 문자가 없는 선사시대의 인류 법생활의 면모는 유적과 유물을 통한 고고학적 탐구와 인류학적 비교를 통한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문명의 발생과 더블어 법의 역사도 새로운 모습으로 전개되기 시작 이른 바 4대 문명에서 이집트에서는 종교적인 것에 집중 별다른 법문서가 남아있지 않고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일찍부터 성문법이 등장 여러 민족들 사이에 전승되었으며, 인도에서는 법과 종교의 문화가 투렷하지 않아서 종교법이 세속생활을 강하게 구속하였고, 중국에서는 법이 유가와 법가의 사회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발전하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성문법 ~ bc 3500경에 문명이 발생하여 bc 539에 신 바빌로니아 제국이 폐르시아의 키루스 왕에게 멸망될 때 까지 여러 민족들에게 전승 발전하였다. 이 문명의 첫 주인공은 수메르인 이였는데 나중에 아카디아인, 아모리인, 아시리아인, 칼레아인 들에 의해서도 크게 바뀌지 않고 유지 되었다. 메소포타미아 법문화 가장 큰 특징은 일찍부터 문자 발명에 성문법을 발전시켰다. ①최초의 성문법~우르우카키나 법전과 우르남무 법전으로 실물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물건 훔친자와 간통은 돌로 쳐서 죽인다. 왕은 신에 의해 임명되었다. ②함무라비 법전 ~ 바빌로니아의 왕 함무라비 bc1792-1750에 편찬 커다란 돌기둥 네면에 새겨진 법전이다. 282개의 조문으로 67, 98번째 제외하고, 모두 해독이 가능 권리, 의무, 직분, 재판, 처벌 등을 규정하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보복률)

                  ☞인더스 문명의 법문화 ~ ①리그베다 시대의 아리아 인 bc1500 무렵, 인도 아대륙 서북부 ②후기 베다 시대 국가의 발생으로 아리아 인들은 리그베다 이외에도 세가지 베다 즉 야유르베다, 아타르베다, 사마베다를 남겼는데 이를 후기 베다라고 한다. bc1000-bc600까지 갠지스강 상류 유역이다. 철기사용 ③베다 시대 이후 카스트 제도와 마누법전 bc6세기부터 서기4세기 까지 약 1000년 걸쳐 인도아대륙에 있었던 헤아릴 수 없는 변화를 겪었다.

                  ☞고대 중국의 법사상과 법제도 ~ ①천명, 천법 사상과 6관 6전 제도, 주왕조 통치 이데올로기 신라 신문왕 681-692때부터 조선에 이르기 까지 모방되었다. ②법가의 변법사상과 성문법 ~ 동주시대 전반기는 춘추시대로서 100여개 제후들이 1200번 전쟁 치르면서 13개로 통합되어 가는 시기이다. bc5세기 동주시대 후반기에는 패권쟁탈이 더욱 심해져서 전국시대라 불렀다. bc476-bc453 시작을 추정한다. 주도한 제후국들을 전국칠웅이라 하고 유가 법가 사사아들은 예치와 법치를 주장 난세를 구할 것을 강조

                  ☞유가사상의 제도화 ~ 법가의 사상을 채택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이사를 승상으로 등용 bc280-208 그의 건의에 따라 이른 바 분서갱유 단행 법치에 대해 논란 사상을 탄압하였다. 법가가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되어 엄혹한 법치는 백성들의 반발을 사서 멸망을 자초 뒤이어 등장한 한왕조는 법치를 혐오 약법삼장이라는 최소한의 법만 남기고 유가사상을 국학으로 채택하였다. 예의 원리는 한마디로 하늘이 내려준 분수를 지키는 것이다. 인의로 통치하고 관료는 천자를 보필하여 백성을 다스려야 하며 백성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상업에 힘써야 한다.

                  ☞유가의 법사상은 한왕조 이래 위, 진, 남북조, 수왕조 거쳐 당왕조 이르러 제도적 틀속에서 구현되었다.

                  ☞로마법 ~ 그리스인들이 예술이나 철학 특히 국가이론에서 불멸의 업적들을 남기므로서 후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신생활에서 유용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과 같이 위대한 로마 법률가들의 업적은 고도의 국가 통치기술의 증거와 차세대를 위한 모범이었다. 로마법은 교육적 가치를 가진다. 고전시대 법학자들의 법률사례는 오늘날까지 모범적인 것으로 남아있다. 로마법의 역사는 기독교 역사와 마찬가지로 고대에 뿌리를 두면서 중세와 근대를 거쳐 전세계로 보편화 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로마는 2000년 너믄 동안 국가로서 존속하였다. ①제1기는 로마의 건국부터 포에니전쟁에서 승리하기까지 BC753-200년 정치적으로 왕정시대BC510까지 공화정 전기를 포함한다. (농업) ②제2기는 로마가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우구스투스가 원수정을 수립하기까지 BC200-27 정치적으로 공화정 후기 해당(상업) ③제3기는 원수정의 창시자인 아우구스투스에서 동서로마 분리 디오클레티아누스 전까지 BC27-283 정치적으로 원수정기에 해당 로마법학이 가장 유성했던 시기이다. ④제4기 디오클레티아누스에서 유스타니아누스의 사망까지 284-565 정치적으로 전주정기에 해당

                  ☞로마는 서기565 이후 1453까지도 존속하였지만 콘스탄티노들을 중심으로 좁은 지역에서 고전적인 로마 법문화를 잊은채 지방적인 비잔티 문화를 이루며 잔존한 시기였기 때문에 법제사적 시대 구분에서 제외한다.

                   ☞조선시대 법제 ~ 태조가 즉위교서에서 국가기본법으로서 법전에 따라 법치주의 통치를 표방한 것에서 기인한다. 태조6년에 경제육전이 편찬 그후 성종때 경국대전이 완성 국가통치 기본법으로 기능하였다. 영조때 속대전, 정조때 대전통편, 고종때 대전회통이 편찬되었다.

                  ☞근대법의 이식과 법제의 준비기 ~ 중국법을 기초로 우리의 법을 발전시켜온 우리나라에 서양법이 알려지게 된 것은 17세기 실학자를 통해 이탈리아 선교사 알레니 1582-1649 쓴 "서학범" 소개되면서 부터이다. 또한 박지원 열하일기에서 백성과 국가에 기여한 것이라면 그 법이 이적에서 나온 것이라도 익혀야 한다고 했다. 그 후 1876 개국으로 본격적 서양법을 접한다.

                  ☞일제하의 법체계 ~ 폭압적 지배를 위한 법체계, 조선의 사회경제 관계에 이식하여 의용하는 일본의 시민법 체계이다.

                  ☞미군정하의 법체계 ~ 해방후 미국의 남한에 대한 지배정책은 미 태평야 방면 총사령부 포고 제1호의 발령에서 시작, "본관의 권한하에서 시행함" 선언과 성립근거를 마련 하므로써 제1공화국이 성립될 때 까지 미군정은 남한에서 유일한 합법적 정부였다. 일제 강점기 때의 구개법도 이용, 군정법령 군정청 부령 및 지령, 군정이 폐기하지 않는 총독부법령, 전통관습법 함께 효력,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특별히 개정 되거나 폐기된 소수를 제외 하고 계속적으로 법적효력을 행사

                  ☞대륙법과 영미법 ~ 대륙법을 근간으로 발전해 왔지만 영미법의 전통도 함께 우리의 법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현대의 세계는 두가지 법이 상호 수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측면도 알게된다. 그러나 고유한 문화적 특징으로 수렴하여 뿌리내리기에 여전히 역부족을 보인다.

                  ☞영미법과 대륙법의 차이 ~ ①처칠은 영국이 하나의 국가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커먼로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였다. 영국에서 법의 통일을 기하기 위하여 로마법의 계수라든가 후속 편찬 작업을 전개 필요없었다. ②로마법은 대학에서 연구되었다. 영국의 경우 법원을 중심으로 법조인이 양성되고 법이 탐구되었지만 대륙의 통치자들은 법학교수를 통하여 법조인이나 행정가를 양성 시켜야 했다. 대학은 통치자로부터 면장과 특권을 부여받은 대가로 라틴어와 로마법과 교회법에 정통한 박사들을 배출시켰다. 그 결과 국가적 법통일에 별 역할을 못하였다. ③그렇기 때문에 법률교육에서 예를 들 때에도 현실에서 사례를 설명보다는 몇백년전 로마에 있었던 예를 들었다. ④영국에서는 법원이 했던 역할을 대륙에서는 입법부가 한 것이다. ⑤1804년의 나폴레옹 법전과 1811 오스트리아 법전은 계몽사상과 합리주의 시대 산물이었다. 법전작업은 전통보다 합리성이 강조되기 마련이다.

                  ☞대륙법과 영미법이 상호 수렴하는 경향 ~ ①현재의 수렴경향:오늘날 보통법과 대륙법 사이에 역사적 유산, 법원전문직업인 구조, 법학교육제도, 법원의 조직, 법이론과 철학에서 입장 등 많은 분야에서 서로 상이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한편 유사성도 많이 발견된다. 법원에서도 서로 제정법과 판례법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경향이다. ②영국의 경우 최근에 제정법의 운영에 큰 변화은 정부 입법이 폭증하는 것이다. 반면 의회법은 무력화 되었으며 동시에 법원의 권한도 축소되었다. ③보통법 이론, 유럽에서 미국법 수용, 법진화론, 자연법 이론, 세계적 수렴론 등 각 나라마다 비교의 방법을 통해서 더 나은 법을 수렴한다.

                  ☞보통법과 형평법 ~ 일종의 관습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왕이 행사하는 재판권은 보통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통법을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고, 개별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형평에 맞게 사건을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 구체적인 사건마다 이익형량을 하고 개인의 잘잘못이나 특성들을 고려하여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 재판을 한 것이다. 이처럼 왕이 행사하는 사법권의 근거가 귀족들이 행사하는 사법권의 근거인 보통법(common law)이 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를 형평법(equity)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연혁적으로 시작된 이러한 보통법(common law)과 형평법(equity)의 분리는 역사발전을 거듭하면서 계속 발전하였다. 왕이 담당하던 사법권도 실질적으로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법귀족이 행사하는 것이었으므로, 나중에는 귀족이 보통법(common law)에 의한 재판과 형평법(equity)에 의한 재판을 모두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사회가 극도로 다양화되고 소송사건도 과거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면서, 전형적인 사건과 비전형적인 사건을 구분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 전형적인 사건에는 보통법이, 비전형적인 사건에는 형평법이 적용된다는 공식의 전제가 흔들리게 된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보통법(common law)과 형평법(equity)의 경계가 애매해지고, 이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됨에 따라 보통법(common law)과 형평법(equity)의 개념 구분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나타났고, 이에 따라 보통법(common law)과 형평법(equity)이 통합되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 법 ~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면 프랑스 혁명이 거론될 것이다. 시민국가로서의 길을 선택한 프랑스는 사회 전분야에 걸쳐 변화를 가져왔다. 통치구조, 민주주의 및 공화제 구현 외에도 근대 민족국가 발흥, 근대적 법제도의 형성 등이 결과물이다. 서구의 법전 편찬과정에서 프랑스 민법전은 하나의 모범으로 부러움의 대상으로 존재했었다.

                  ☞프랑스 혁명 ~ 귀족과 성직자의 특권 폐지, 인간의 자유와 평등선언, 헌법에 의한 군주의 절대권 폐지, 시민적 자유와 자유민주주의 이념적 기초확립으로 국가의 새로운 질서 기본원칙은 1789.8.26 국민의회가 채택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혁명이후의 제도변화 ~ 국민의회 시기, 민중을 대변한 급진 공화파 국민 공회 시기, 다시 온건파인 부유한 시민 계급이 주도한 3단계를 거치면서 완성하는 각 단계의 정책을 이끄는 이념을 어떤 방식으로 규범화 할 필요가 있었다.

                  ☞근대법전의 편찬 ~ ①프랑스 민법전의 제정은 곧 봉건적 소유제의 청산을 의미한 것이다. ②포르탈리스는 프랑스 민법전 계정에 주역을 담당 ③나폴레옹은 민법전 뿐만 아니라 민사소송법, 상법, 형법, 형사소송법 등을 편찬. ④구체제하에서 프랑스 전역을 거쳐 어느 정도 통일적인 모습을 갖고 있었던 것은 로마법과 교회법에서 유래한 법분야들이었다. 법학문헌은 프랑스만의 문헌이라기 보다  전유럽의 문헌이기 때문에 북부 프랑스 관습법과 남부 프랑스 성문법이 로마법 계수이후  자연법의 사례를 함께한 후 별차이 없이 통일적인 내용을 갖게 되었다. ⑤1804나폴레옹 법전 제정은 그 자체가 근대 시민법 성립을 결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나포레옹 민법전은 세계 최초의 근대적 민법전이다.

                  ☞프랑스의 대문호인 스탕달이 영감을 받을 정도로 나폴레옹 법전은 훌륭한 법전으로 평가 받아왔다. 특히 독일의 국가의식에 결정족인 영향을 끼쳤고 시민적 자유의식과 독립의식 고취에 기여하였다. 라틴계 국가들에 놀랄 만한 영향과 특히 이탈리아, 스페인, 포루투칼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미국내의 법전 편찬에 주목할 만한 영향을 주었다. 그 외에도 베넬룩스3국, 루마니아, 발칸반도의 국가들 일본에 이르기 까지 근대적 민법전의 전형은 모범이 되었다.

                  ☞독일법 ~ 대륙법의 근간이요 우리법의 큰 영향을 미친다. 독일은 프랑스나 미국 영국에 비해 민주주의가 매우 더디게 발전했다. 공화국이 성립한 것은 겨우 1차대전 후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였다. 이것도 잠시 곧장 나치스 제국의 형태로 반전 세계2차대전을 일으킨 당사국이 되었다. 패전후 동서분단 경험하고 사회주의 퇴조와 함께 통일을 이루게 된다.

                  ☞독일의 근대화는 ~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전개, 산업혁명이 늦었다. 비스마르크에 의한 통일은 입헌군주제 성립

                  ☞일반적으로 역사가 발전 과정은 ~ 시민혁명, 봉건적 토지폐지, 농민층의 계층분화, 산업부르주아지의 성장

                  ☞나폴레옹 통치하의 프랑스는 프로이센에 대하여 가혹한 수탈과 내정간섭을 자행하였다. 프로이센의 개혁운동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후 독일통일 주도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독일의 통일은 근대의 주역인 국민이 아니라 프로이센의 재상 ㅂ스마르크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1848.3월 혁명)

                  ☞비스마르크 ~ 사회주의자 탄압법을 제정 노동자 계급을 탄압, 노동자 의료보험법 재해보험법 등 제정, 의회제와 군주제가 공존 타협적 제도가 이루워졌다. 독일 자본주의는 1873 세계적 대불황을 계기로 그 변질과정에 들어선다. 자유주의로부터 보호주의로의경제정책을 변화했다.

                  ☞19세기 독일법학 ~ 독일의 법실증주의가 형성되던 시기, 독일의 대표적인 역사법학파는 1848.3월 혁명 이 후의 복고반동기에 정치적으로는 군주제에 타협하면서 역사법학파의 대표자인 사비니의 법학이 추상적 원리에 의하여 구성된 것은 바로 그가 실정적으로 고정화 되어있던 각종의 구체적 내용을 도외시 하고자 했던 것에 불과

                  ☞바이마르 공화국 법제 ~ ①군사적 파멸과 일반적인 지도력 상실의 결과인 1918.11월 혁명은 독일을 혼돈속으로 빠뜨렸으며 대부분 제후들은 사퇴에 의하여 더욱 가중되었다. ②러시아를 모범으로 한 소비에트 정부를 일시 성립시켰다. ③다수인 사회주의자들이 의회 민주주의에 굳게 매임으로써 황제 퇴위가 이루어 졌다. 그리하여 바이마르 국민집회와 정당국가로서의 공화국이 가능하게 되었다. ④바이마르 헌법에서는 모든 것이 국민에게 향하여 졌다. 국민에 대한 책임의식과 모든 국민의 자율성이 헌법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전제로 되었다. 이를 위해서 정치적 평온이 필요했다. 그러나 국가는 근저에서부터 동요되였으며 사회구조는 흔들렸다. ⑤1933.1.30 제국대통령 힌데부르크는 제국 재상에 아돌프 히틀러를 임명 히틀러내각이 성립되었다. 히틀러의 나치당은 권모술수와 태러로 반대파를 탄압하고 바이마르 헌정체제에 조종을 울렸다. 수권법은 내각이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법이다. 바이마르 후기 체제에 해당하는 이 시기를 나치시대 또 제3제국의 시대라 한다.

                  ☞현대 독일의 법 ~ ①1945.5.8 제2차 대전이 종결 제3제국은 붕괴되었다. 400만 가까운 희생으로 전쟁이 끝났다. 미, 영, 소 포츠담 협약이 전후 처리를 결정하였다. 독일 국토는 75%로 축소되었다. 연합국에 4개 지역으로 수도와 국토가 분할 점령되었다. ②1980 중반부터 고르바초프가 제기한 페레스트로이카의 확산으로 소련의 위성국가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사회주의 국가에 자유화 물결이 통제경재를 청산하고 시장경재 다당제 정치체제 도입 민주화 열기가 확산되었다. 1989동독주민이 대거탈출 서독으로 이주 숫자가 증가하고 대거 망명 요청사태에 마침내 1989.11.8 베를린장벽이 붕괴되었다.

                  ☞로마법 계수 ~ 20세기 초 영국의 법역사를 집대성한 법사학자인 메이틀랜드는 그의 저서 "영국법과 르네상스"에서 근대세계의 탄생을 알리는 3개의 R을 지적 그것은 바로 르네상스, 종교개혁, 그리고 계수라는 것이다. 세계문화에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얼마나 엄청난 변화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바로 그것들에 버금가는 선에 올려놓고 있다.

                  ☞①로마법 계수는 중세말기 대학에서 로마법연구 성행 활발했다. ②독일에서 로마법을 배운 법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학식 법률가집단이 교회법과 로마법이 함께 연구되었다. ③12세기 초반에 북부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부활 로마법 연구는 프랑스 영국에서도 있었지만 주로 이탈리아 대학들에서 집중적으로 케논법학 (교회법학)함께 성숙되었다. ④이탈리아에 이어서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13, 14세기에 대학과 법학교가 설립되었다. 독일에서는 거의 모든 상급 법전에서 학식법률가가 법관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케논법의 소송절차는 서면주의로 비밀이며 제출된 서면에 의해 판결, 증인신문은 원고와 피고가 없는 곳에서 이루워 지고 법관은 심리지휘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판결.

                  ☞로마법 계수의 결과로 나타난 제국입법의 대표적인 것중 하나는 1532카롤 5세의 형사재판령 일명 카롤리나 형법전이다. 독일어로 쓰여진 하나의 거대한 입법적 업적이다.

                  ☞영국법 ~ 영미법계 본산인 영국의 커먼로와 에퀴티 그리고 판례법 전통에 우리나라 법제와도 끈을 맺고 있다. 영국법은 재판에 의해 ㄱ 존재가 확인된 관습법의 집합체이다. 국왕, 중앙정부, 지자체, 개인 커먼로의 원리에 복종하므로 영국에서는 대륙법에서 말하는 공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자체가 발달 각지에 고유한 것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스콜틀랜드법은 대륙법에 가까워 법계론에서 구별된다.

                  ☞영국법의 역사는 1066 노르망디공 윌리엄1세가 잉글랜드를 정복한 것에서 시작한다. 그 전에는앵글로 색슨법이 존재했었다. 처음부터 기독교 영향을 받아 법은 신의 의지로 생각되었고 일종의 자연법으로 간주되었다. 윌리엄왕을 이은 헨리1세와 2세는 커먼로라 하는 보통법을 지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영국의 법원조직 ~ 귀족원, 항소법원, 고등법원, 형사법원, 군법원, 특별법원, 유럽법원(19731.1영국이 유럽공동체 가입에 따라 귀족원 보다 유럽법원이 최고법원이 되었다.

                  ☞미국법 ~ 미국은 초기 식민지 시대부터 영국법과는 상이한 법전통이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성문헌법을 만들고 연발제를 도입 삼권분립 원리등 계몽주의적 정치이념에 입각한 정부와 연방대법원을 정점으로 판례를 남겼다. 현재는 독일에 못지 않게 우리 법제와 법학에 영향을 주는 것이 미국 법제와 법 이론이다. 건국 초기 1700년 당시 인구 30만명에 이르렀다. 미국의 법언어, 법학방법론, 법의 기본개념에서 영국법 전통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인용된 책은 "블랙스톤" 영국법 주석이다.

                  ☞독립전쟁 ~ 독립전쟁을 유발한 것은 식민지 세입부담, 통상규제 강화, 신대륙 미국자체의 통치 곤란성 등 식민지인들은 자유에 대한 억압조치에 대항 1774 제1차 대륙회의를 필라델피아에서 개최 55명의 대표자가 영국의 부당한 처우에 대항하고자 모인 것이다. 제2차 대륙회의가 소집된 1775 이미 영국과 전쟁이 시작되었다. 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고 1777 연합규약을 기초하였다. 1789.4 초대 대통령에 워싱톤이 취임 권리장정 1791 비준이 완료되었다.

                  ☞미국의 법발전 ~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56명의 인물중 25명이 변호사, 독립과 함께 미국은 영국법의 적용을 의도적으로 거부경향을 보였다. 제임스 켄트의 미국법 주석이 편찬.

                  ☞1776 독립이 쟁취되었다. 19세기 초기에 비로소 미국 법학교와 연구체계가 자리 잡히기 시작, 조셉스토리는 (1779-1845) 1811 연방대법관에 임명되었고 1829 하버드대 교수가 되었다. 2929 로스쿨 개교, 조셉스토리 저작물들이 출현하면서 창조적인 미국법의 통일성이 이루어졌다.

                  ☞미국법의 다양한 특징들 ~ 미국에서 법과 형평이 통일된 최고법원은 존재하지 않은다. 연방대법원은 미국헌법에 따라 중요한 헌법적 사안과 연방법률 국제조약들에만 한정된다. 각 주의 대법원은 종심이다. 그렇지만 각 주마다. 상이한 점들이 발견된다. 그러나 주의 법들은 영국의 보통법에 기초해서 발전, 미국에서 법관은 10년에서 20년 기간의 임기를 선거직으로 재선이 가능하다. 법학교육에서 단지 법학교수들만에 의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학, 사회학, 의학 등 관련분야 제휴속에서 이루워 진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내용이다.

                  ☞미국헌법 제정의 한계 ~ 1787제정된 성문헌법이 220되도록 존속한다는 것은 정치사에 기적이다.  노예제, 자동차와 기차가 없었던 농업사회시절에 만들어진 헌법이 탈산업사회를 넘어 정보화 사회와 우주과학시대에 접어든 이 시대까지 약간의 수정만 하면서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것은 성공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토마스 제퍼슨이나 제임스 메디슨 비롯한 미국헌법 입안자들이 당대 최고수준의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하드라도 인식능력 한계를 지적한다. 당시로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결함을 지적한 것이다.

                  ☞중국법 ~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이다. 그러면서 1982 헌법 이후부터 종전의 1975, 1978의 좌파사상위주의 헌법을 많이 포기하고 1954제정 헌법의 제도로 복귀한 측면을 보여준다. ㄱ 이후에도 1993부분개정이 있었다. 시장원리와 사회주의 원리 통합을 시도 활로를 찾는 법제는 우리 이웃국가이기에 이해 필요성이 있다할 것이다.

                  ☞현대 중국법의 바달 ~ 4000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1911신해혁명까지는 기본적으로 중국의 전통법이 승계되어왔다. 현재 다음과 같이 4단계를 거쳐 발달하였다. ①현대 중국법의 탄생1949-1952민주개혁과 국민경제 회복기 ②초보적인 발달 1953-1965 사회주의 개조와 사회주의 경제건설 개시기 ③현대 중국법의 수난 1966-1976 ㅠ문화 대혁명기 ④회복과 발전 1979-이후 사회주의 경제, 정치경제 개혁기

                  ☞현대 중국법의 탄생 ~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선언 전인 1949.9중국공산당의 지도하에 중국인민 정치협상회의 제1기 전체회의에서 공동강령과 정부조직법이 재정되었다.

                  ☞인도의 법 ~ 서구의 침략이 시작되면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 치하에 접어든다. 그래서 인도국민들 자신의 통일된 면모를 갖추어 마침내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독립을 이루었다. 그 과정에서 파키스탄과 분리과정이란 뼈아픈 진통이 있었다. 통일국가는 연방제 정부의 방법으로 실현.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서 발생한 법제도의 변화 ~ 미망인 재혼금지 등 문제성을 가진 전통법 폐지, 정부조직과 법원조직 영국법을 모델로, 고대의 힌두법을 다르마수트라 부른다.

                  ☞다르마수트라는 힌두법은 영국의 식민지 통치 거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민법분야 는 거의 영국의 보통법 내용으로 대체 되었다. 그러나 가족법과 상속법만큼은 힌두법의 원리 고수.

                  ☞인도의 헌법 기술 ~ 연방국가, 기본권 조항있다. 의원내각제.

                  ☞인도 헌법의 특징 ~ 각국의 수많은 헌법으로부터 실질적으로 차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특징이 있다. 각 국 헌법 좋은 점만 취하고 현실에 적합한 구조로 변형, 기본권의 장은 미국헌법의 예, 의원내각제 영국의 차용이고 국가정책의 지도원리는 아일랜드 헌법을 취하였다. 비상사태 규정은 바이마르 독일헌법과 인도정부법을 참조 세상에서 가장 길고 상세한 헌법전이다.

                  ☞일본법 ~ 우리나라 법제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식민지배 법제도는 당시 법문화와 함께 독립후에도 잔존하였다. 그러나 일본대로 서구문화 계수하여 전통문화를 탈피하고 근대화 한 나라이다.

                  ☞서구법의 전래 ~ 서구와의 교역이 시작되면서 일본의 장군들과 마찰이 있었다. 처음 무역국은 네델란드 점차 불평등조약으로 외교를 연 나라가 미국이었다. 이어서 영국, 러시아, 네델란드도 조약을 체결 정주권을 얻었다. 1889제정 헌법에서 프러시아 모델을 따라서 입헌군주제 형태를 취하였다.

                  ☞영미법에 의한 영향 ~ 1945 제2차 대전 이후 영미법이 일본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시대적 상황

                  ☞유럽연합법 ~ 현대사 획기적 사건이 유럽연합이다. 연방체제로 묶어져 가는 것은 다른 세계에도 파급효과가 미칠 것임에 틀림없다. ①1951.4.18 파리에서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였다. ②19731.1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 유럽공동체에 가입, 1979.6.7 과 10 일 사이에 유럽의회의원 직접선거가 실시되어 1979.7.17 개회식을 가졌다. 1986에 12개 회원국으로 확대 되었다. ③1992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유럽연합(eu)탄생 1997 더욱 심화시킨 암스테르담 조약 채택.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가 세계를 양분한 가운데 유럽의 단합이 필요하다고 생각에서 출발 유럽공동체는 처음 1980대에 프랑스법을 중심으로 한 대륙법에 기초를 두고 적용 특히 프랑스 행정법의 영향이 컸다.

                  ☞러시아 법 ~ 사회주의 세계의 법은 20세기에 빼놓을 수 없는 법계라고 말할 수 있다. 1980중후반부터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가 몰락 현재는 위력적이라 볼 수 없다.

                  ☞사회주의 법 ~ 주세적 법질서를 타도한 계몽기의 부르주아 계급의 운동을 영도했던 자연법 사상은 신분적, 봉건적, 법관념을 타파하고 몰신분적, 무차별적인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상위에서 법질서를 구상하였다. 제3계급은 혁명적 계급으로ㅓ 전체 사회를 담당하면서 등장하였다. 제3계급은 자신의 법질서를 형성할 때 기본적으로 자연법 사상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시민법은 자유로운 개인의 법질서인 것이다.

                  ☞소비에트 ~ 레닌은 러시아라는 특수한 현실에 그의 이론을 적용시켰고 구체적으로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1905혁명기간동안 처음 나타난 소비에트는 전국적으로 조직을 만들지 못한채 소멸하였지만 1917혁명기간에는 전국적 조직까지 발전하였다. 소비에트는 자치적 통치기구였다. 완전한 자율성을 누렸다. 입법기관이자 동시에 집행기관이었다. 노동자, 농민, 병사 즉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통치기구였다. 소비에트는 직접 민주제적 방식을 채택하였다.

                  ☞민주주의적 의회의 구성 ~ 1988 이래 고르바초프에 의해 추진된 헌법개혁은 자유선거에 의해 의회구성 독립적 사법부 설치 및 정부조직의 헌법적 변화를 수반하였다. 1988. 6 제19차 공산당 전체회의에서 고르바초프는 법치주의를 새로운 정치질서의 중심개념으로 선언하고 새로운 입법부로서 인민대의원 대회의 창설을 선언하였다.

                  ☞개혁에 보다 박차를 가하고 대통령에 권력집중시키기 위하여 1990.2헌법개정안과 대통령 직무법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개정법에는 국민 직선제 대통령제 규정하고 있었으나 초대 대통령 선출만큼은 의회선거에 의하여 고르바초프는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옐친의 공산당 금지조치 ~ 1991.8 공산당 보수파에 의한 쿠데타가 실패한 직후 고르바초프는 대통령직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공산당 서기장직을 사임했다. 한편 진압에 성공한 옐친은 공산당 활동을 금지하고 그 재산을 몰수 쿠데타 관련자 검거하였다. 옐친의 초월헌법적 비법적 행동은 입헌주의를 저해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쿠데타 이후 소연방과 러시아의 권력관계가 역전된 결과 신연방조약안은 보다 지방공화국에 유리하도록 변경 되었다.

                  ☞1991.12 옐친의 주도하에 러시아, 백러시아, 우크라이나의 독립국가연합 창설 내용으로 민스크 조약이 체결 되었다. 소연방해체하고 연방구성 공화국들이 연방에 대신하여 보다 느슨한 국가연합체인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한다는 것이었다. 옐친과 고르바초프의 정쟁의 측면은 가지고 있었으며 옐친은 소연방의 중앙조직과 제도를 철저히 무시 고사 작전으로 결국 고르바초프는 대통령직에서 사임

                  ☞소연방의 해체 ~ 쿠데타 방식으로 이루워졌다. 그러나 정치적 위기는 해결하는데 적절한 것으로 수용 소연방의 헌법적 질서가 정당성이 없는 것으로 생각 새로운 변화를 원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공화국 헌법의 제정과정 ~ 기존 헌법의 개정 1990 이후 기존의 1978러시아 헌법은 상당부분 규범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 결과 빈번하게 개정중 특히 4가지 개정은 중요한 내용이다. 첫째가 1990.6공산당의 영도적 지위가 폐지되었다. 다음 1990.12 국가적 소유 제도를 소유형태 다양성을 인정하고 모든 소유형태가 평등하게 보장되는 것으로 하였다. 다음 1991.5 대통령에 관한 규정을 3월 대통령직 설치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개정, 다음 1992.4 권력분립의 원칙이 헌법명문으로 규정되었으며 자연법적 인권 권리 및 자유에 대한 규정이 헌법전에 명시되었다. 1978 러시아 헌법은 사회주의 헌법적 내용과 입헌주의 헌법적 내용을 담은 상호 모순되는 규정들이 혼재하는 실태에 놓이게 되었다.

                  ☞국민투표의 실시와 신헌법의 발효 ~ 헌법위원회의 신헌법안이 모두 부결되자 옐친은 1993.1 기존 헌법위원회를 해산시키고 자신의 헌법초안 작업반을 새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헌법위원회에 의한 헌법개정방식을 포기하고 헌법협의회 방식을 채택하고자 하였다. 1993.3 제8차 인민대의원회에서 대통령의 경제와 정부구성에 관한 권한을 제한하는 결의를 하자 옐친은 즉각 대통령 특별통치 선포 거부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를 선언하였다.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하자 옐친은 철회 하였으나 1993.4 국민투표에서 67% 찬성으로 신임을 획득 1993.9.21기존의 헌법질서가 무효임을 선언 아시아 연방의 점진적 헌법개혁에 관한 대통령령 제1400호 발령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재판소 직무도 정지 의회무장점령 10.4 의회파를 무력으로 진압, 신헌법초안을 1993.12.12국민투표에서 확정동시에 양원의 선거도 실시하게 되었다.

                  ☞이슬람법 ~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일부 밀집해 있고 지역과 인구도 광범위한 점에서 피상적으로 파악하기보다 관심이 필요하다.

                  ☞이슬람법을 지칭하는 용어 ~ 무하마드법(마호메트), 무슬림법, 사라센법, 회교법, 그러나 대표적으로 아라비아어로 샤리아라고 부른다.

                   ☞이슬람법의 형성과정 ~ 7세기초 무하마드(마호메트)가 종교를 창시하면서 아랍인들 사이에 새로운 신정체제 국가가 성립하였다. 그 후 오스만 공국이 뒤를 이었다. (1299-1922) 오스만공국은 서양에 점차 침략을 당하게 되고 나폴레옹 이집트 원정기 하나의 예와 19세기에는 유럽과 충돌이 많았다. 이에 따라 기독교 서구 열강에 맞서고자 범이슬람 운동을 적극적으로 확산시켰다. 독일과 함께 동맹국 전선에 가담했던 오스만은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제국이 와해되는 운명을 맞았다. 무스타파 장군에 의해 독립전쟁이 수행되었고 칼리프제와 왕정이 폐지하고 터키 공화국을 건설하였다. 이로써 1299 이래 600년 이상 이슬람 세계의 종주국으로 종속해 왔던 오스만 제국은 종막을 고하였다. 따라서 20개 국가가 넘는 개별국가로 분할되었다. 오랜 화려한 역사를 가진 이슬람 세계는 신자수가 세계이누의 3분의 1에 육박하고 유엔에 가입한 이슬람 국가수는 55개국에 일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법 ~ 오랜 서양의 식민지 1990전후 입헌민주주의 체제 확립과정은 세계적인 수준의 모델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진실과 화해위원회" 이다. 이 위원회 발족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지 마음만 바로잡으면 누적된 증오와 적대를 해소할 수 있는 세계첨단의 제도와 사회의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한 예 라고 하겠다.

                  ☞식민지 통치 시작과 전쟁 ~ 남아프라카 공화국은 대륙법계와 영국 커먼로 법계의 혼합체로서 그 기원1652, 네델란드 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95영국인이 네델란드 지배아래 있던 남단지역 케이프를 정복 1806영국인이 2차로 진주하면서 통치체제를 확립하자 네델란드인들은 남아프리카 내륙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영국인과 네델란드 사이의 갈등은 전쟁으로 1902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남아프리카 전역은 영국의 통치아래놓이게 되었다.

                  ☞종합 세계의 법 ~ ①법률직업의 종류:미국이나 캐나다 경우 변호사 조직으로 엮어져있다. 그에 비해 대륙법계는 국가에서 법률가 초년에 자신의 장래분야 결정을 요구받아 결정하고 일단 선택이 된 후에는 이동이 비교적 적다. 사회주의와 아시아 국가는 다양하다. 법전통은 미국이 가장 큰 규모의 법률회사와 아시아 국가는 다양하다. 법전통에서는 미국이 가장 큰 규모의 법률회사와 법률가 보유, 현재 경향은 변호사와 법관수 대폭 늘어났고, 여성법조인 증가.

                  ☞ bc3500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인더스문명, 그리스, 로마, 게르만족, 프랑크

                   (참고문헌)

                  ☞ 강경선, 전원배  공저 / 비교법 /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 2008년도

                   

                  ※인도가 독립할때 국가가 분리된 원인

                  인도의 독립은 동시에 회교도의 나라 파키스탄의 독립을 의미했고, 따라서 독립과 더불어 회교도가 파키스탄에, 또 파키스탄에서부터 힌두교도가 인도로 옮겨오기 시작했던 것이죠 그런 과정에서 힌두교도와 회교도 .

                  인도는 힌두교인 반면 파키스탄은 이슬람교, 스리랑카는 불교 이기 때문에 종교간의 갈등

                   

                  글 쓰기

                   2010.4.16 고홍인 수록

                   

                  ★고구려 2대 유리왕 황조가,  백제 현조 정읍사, 신라 유리왕 도솔가, 현존 최초의 향가 신라 서동요, 춘향전의 근원설화 도미처설화.

                  ★향가의 기록에는 향찰이라는 표기법 창안 위홍과 대구화상에 의해 편찬된 삼대목외 25수가 삼국유사에 특히 월명사 제망매가, 충담사, 찬기파랑가 차원이 높다.

                  ★신라 수이전에 실렸었다고 하는 최치원과 쌍녀분 설화, 심청전의 근원설화 거타지, 흥부전 근원설화 유양잡종 등 서사문학의 수작들이다.

                  ★성리학은 송의 주희에 의해 집대성

                  ★소위 가설 항담을 모았다고 하는 패관문학인 이인로의 파한집, 최자의 보한집, 이규보의 백운소설, 이제현의 역옹패설, 개인문집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이색의 목은집, 정몽주의 포은집 백미들이다. 이규보의 동명왕편, 이승휴의 제왕운기

                  ★고려말 가전 일종의 의인체소서로 임춘의 국순전과 공방전, 이규보의 국선생전과 청강사자현부전, 이곡 죽부인전

                  ★세종대왕은 신숙주, 성삼문, 등을 중국의 운학자 황찬에 보내 훈민정음창제, 이때 중국에서 원이 멸망하고 명이 신흥발전하고, 유럽에서는 르네상스 시작

                  ★훈민정음 악장문학 대표작 용비어천가 그리고 세종이 직접 월인천강지곡을 지었다.

                  ★시가문학 작가들은 이조년, 길재, 정몽주, 변계량, 이황, 이이, 정극인, 정철, 송순, 양사언

                  ★시조나 가사 ~ 김시습의 금오신화, 서거정의 동인시화, 성현의 용재총화, 어숙권의 패관잡기, 강희맹의 촌담해이

                  ★40 여년 사이에 임진, 정유, 정묘, 병자, (4란)

                  ★시조에서 윤선도와 박인로, 이현보, 이세보

                  ★조선후기 시조집은 김천택의 청구영언, 김수장의 해동가요, 박효관, 안민영의 가곡원류

                  ★내방가사 ~ 영남지방 부녀자 창작은 시집살이, 신세한탄, 접빈객과 봉제사, 현모양처.

                  ★유배가사 ~ 송주석의 북관곡, 안조환의 만언사, 김진형의 북천가

                  ★기행가사 ~ 김인경의 일동장유가, 홍순학의 연행가.

                  ★순수한글 소설 ~ 홍길동전, 한문소설 금오신화, 숙종때 김만중이 쓴 구운몽, 사씨남정기

                  ★궁중문학 ~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이고 모친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킨 사건을 그린 계축일기, 비극적 왕비 인현왕후전, 사도세자 비극 한중록

                  ★공무도하가 백수광부의처, 황조가 유리왕, 정읍사 상인의처.

                  ★통일신라의 문학 ~ 제망매가 월명사, 처용가 처용, 화왕계 설총

                  ★고려의 문학 ~ 쌍화점, 국순전 임춘, 하님별곡 한림제유, 동명왕편 이규보

                  ★조선의 시가 문학  평시조 ~ 이조년, 길재, 맹사성, 성삼문, 황진이, 정철

                  ★양반가사 ~ 사미인곡 정철, 개화가사 최제우

                  ★우리 고소설의 출발점은 대개 금오신화로 잡는다. 전기소설이므로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인간성에 집착하여 남녀간의 자유분망한 애정을 다루었다. 많은 설화가 정리되어있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고려사, 수이전, 등 그리고 백운소설, 파한집, 보한집, 역옹패설, 시화집에서 영향, 고려중기 12세기 창작된 국순전, 공반전(임춘), 국선생전, 청장사자현부전(이규보), 죽부인전(이곡), 저생전(이정), 정시자전(석식영암) 등의 가전체 문학의 전통은 자양분 공급하였다. 특히 삼국사기 삼국유사 설화는 조선조 고소설의 모태가 되었다.

                  ★김시습 1434-1493 금오신화 필두로 1세기 1명꼴로 소설의 대가가 나타난다. 김시습보다 100년 늦게 허균이 등장 1569-1618 홍기동전은 사회소설로 봉건왕조의 최초언급 이외에도 허균은 성소부부고문집 다섯편의 한문소설을 남겼다. 다섯편의 한문소설은 엄처사전, 손곡산인전, 장산인전, 남궁선생전, 장새전, 불행한 처지의 출생인물들이다. 홍길동전은 국문소설인데 불교설화이다. 특히 석보상절에 나오는 목련자전, 안락국전, 선우태라전, 등도 국문이다. 국문소설의 효시가 된다.

                  ★임진애란을 소재로 한 임지록(사명당, 이여송, 김운서, 강홍립 등 실재인물들의 이야기로 민족감정 토로)

                  ★조선조 후기에 사대부계층 중심으로 봉건왕조의 허구와 모순 상징적으로 파헤치는 장화홍련전, 김인향전, 황월선전, 콩쥐팥쥐전, 정을선전, 사씨남전기, 등이 있고, 우화소설에는 두껍전, 녹처사연회, 까치전, 황새결송, 서동지전, 서대주전, 서옥기 등

                   ★연암 박지원은 1737-1805 한문학의 최고봉, 연암집, 방격각외전, 열하일기, 우상전, 민옹전, 마장전, 양반전, 허생전, 연암집은 한문소설

                  ★정조때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판소리계 소설 신재효 손수개작정리,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별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가문소설 대표작은 완월회맹연, 임화정연, 명주보월빙, 윤하정삼문취록, 화산선계록, 유이양문록 등이있다.

                  ★명주보월빙, 윤하정삼문취록, 엄씨효문청행록은 3부작으로 장편대하소설로 100책, 105책, 30책 전체 235책의 국문 필사본이다.

                  ★만적사저포기, 금오신화 김시습에 남원부양씨성 서생이 부모여의고 장가들지 못해 동쪼방에서 홀로살고

                  ★김시습1434-1493 자는 열경 호는 설작, 청한자, 동봉, 췌세옹, 매월당, 세종17년 태어났다. 방랑과 환속 거듭 단종, 세조, 성종, 24년에 59세로 운명. 생육신의 한사람, 저서로 매월당집, 사유록, 십현담요해, 금오신화 등이있다. 한문단편들은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함께 금오신화에 실려있는 전기소설 전형.

                  ★양반전 박지원 1737-1805 호 연암, 낙척불우, 정조4년에 이용후생 실학에 청나라 다녀와서 열하일기 26권이 문제되었다. 양반전, 허생전, 호질, 우상전, 예덕선생전, 민옹전 등 기,승,전,결 형식

                  ★운영전은 궁녀의 운영과 궁외 야인인 김진사가 조선의 봉건적 사회제도의 모순된 현실을 뛰어넘어 인간본능의 자유스러운 표출모색, 에로스 추가하다가 한계에 부딪쳐 자살한 비극소설

                  ★최척전은 중종에서 인조때 애정소설, 조위한 동생 조찬한 허균 사망뒤

                  ★박씨전은 여호걸계 소설의 범주에 들어가는 역사소설이다. 따라서 상위적 여성과 하위적 남성이 등장하여 천상계 여자와 지상계 남자와의 온달, 서동, 나무꾼

                  ★서포 김만중이 그의 어머니 윤씨를 위해서 선천에 유배될 때 구운몽을 지었다.

                  ★배비장전은 판소리계열의 풍자 해학 소설

                  ★춘향전은 최고의 걸작이다. 작자 연대 미상

                  ★내연적 의미란 어떤 특정한 문맥속에서 독자가 외연적 의미에 파악감지되도록 되어있는 의미들을 말한다. 동시에 암시하거나 내포할 때 즉 함축할 때 이를 내연이라한다.

                  ★허구로서의 문학 ~ 문학은 특수한 사실을 모방 묘사하는 역사와는 달리 개연성을 모방 한다고 말한 아리스텔레스는 바로 그 개연성이 문학의 허구성을 정당화 한다고 하였다. 어떠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한도내에서 어떠한 허구라도 가능하다. 그래서 무척 닮은 허구와 실제와 전혀 닮지 않은 허구 (신화) 이르기 까지 허구의 정도는 다양하다.

                  ★①금오신화 김시습 1434-1493 남녀간의 자유분망한 애정 ②구운몽 서포 김만중 이상소설 일부다처주의 ③소노공 중국소설 서유기에 나온 조화가 많다고 하는 원숭이 ④서동지전 서생원 쥐의 생태를 의인화 ⑤무정, 유정, 개척자, 사랑, 등과 춘원 이광수 대표작 장편소설

                  ★모방이 외부 지향적이라면 표현은 내부지향적이다. 즉 모방과 표현은 정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 하나는 밖에서 작품으로 또 하나는 작품을 통하여 내부를 보여준다.

                  ★괴태는 자신의 실연 괴로움을 씻어 버리기 위하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다고 하지만 일방적으로 작품은 독자를 위하여 쓰여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이란 본래 즐거운 행위이며 또 실제를 대할 때 보다 모방을 대하면 아름답고 즐겁게 느껴질 수 있다고 한다. 무서운 짐승은 현실적으로 두려운 것이나 그것을 그림으로 잘 그려 즐거움을 준다.

                  ★약한 동물을 잡아먹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악어의 심보나 인간의 잔인성에서 유래하는 것이라는 냉소적 견해보다는 비극 역시 모방이고 모방을 근본적으로 즐거운 것이라는 견해.

                  ★문학이 하나의 믿을 만한 즉 개연성이 있는 허구가 되려면 믿을만큼 꾸며야 할 것이다. 완결된 덩어리 내부적 조직을 가지고 구조라는 학문에서 전체를 이루는 요소들의 집합

                  ★그러나 문학작품은 유기체처럼 생성, 발전, 쇠퇴, 소멸, 하는 것이 아니므로 유기체와의 유추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할 수 없다. 구조설에 더 주위를 기울이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단 유기적구조라는 개념은 살려도 좋다. 왜냐하면 문학적 구조는 건물처럼 일정한 공간을 점령하고 무변화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시간의 경과를 통하여  의식속에서 파악되는 동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작품의 구조는 그 본체는 계속 유지하면서도 그것의 모습은 조금찍 변할 것이다. 그러니까 살아있는 구조, 동적 구조라 할 수 있다. 작품이라는 구조를 이룰 때 통일성을 의식하게 된다. 모든 요소들이 하나로 뭉친 상태가 바로 통일성이다. 전체적 조화 문학은 언어의 모든 면을 재료로 삼은 동적구조라는 정의는 수긍할만 하다.

                  ★저항에 그 주된 목적을 두었으며 따라서 이상주의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시대적 사회적 요청을 반영한 이상주의적 지향은 시대사상과 교훈을 주로 표현했으니 거기에서 시적 사유의 밀도나 개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마디로 시 자체로서라기 보다는 정치적 사회적 의도가 선행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교훈시 일인자 육당 최남선 독보적

                  ★1918 태서문예신보에서 김억은 상징주의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1919 문예동인지 창조, 주요한 불노리, 폐허, 장미촌, 백조 1922속출 새로운 시대 도래하였다. 굳은 시의 형식을 타파하고 새로운 자유시 창조 대표작은 불노리

                  ★3.1운동 이후 사조는 폐허, 백조, 주관주의와 감상주의로 빠져들었으며 여기서 김소월, 한용운 훌륭한 시인이 있었다. 김소월은 전통적 정감을 민요적 리듬 구성 시세계 확장, 한용운 님의 침묵, 1926알 수 없어요, 불교의 형이상학적 내용을 여성적 호흡과 리듬으로 형상화 심오한 사상을 표현 1920년대 시가 다음 시대로 이어지는 길을 마련해 주었다.

                  ★1930 모더니즘 영향은 지속되었다. 생명파이어 청록파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1939재래의시간과 방법을 재음미 새로운 자연과 생명의 리듬을 찾아내려 했다. 이 무렵 일제의 지배가 끝나가고 우리 시의 마지막 페이지가 쓰여졌다. 그것은 윤동주 하늘과 별과 시 1948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28세 일본 형무소에서 요절, 1930년대 후반 후기 혁명가 이육사와 더블어 시사의 거장이었다.

                  ★8.15 독립후 환희와 자유에 도취할 사이도 없이 혼란과 어려움이 뒤따랐다.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 유치환, 서정주,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시의 전통과 기반을 튼튼히 지켜 주었다.

                  ★이상화와 김소월은 1920 우리나라 시문학 역사에 뚜렷한 자리를 차지하는 시인들이다.

                  ★김소월의 초기작품 야의우적 ~ 내신세 가엾이도 밤의 빗방울 같아서 험한 산이 막으면 돌아서 가고 모진 바위 만나면 넘쳐흐르지만  그러나 그래도 헤어날 길이 없어 무거운 설움을 안고 지향없이 헤멘다. 2년후에 발표된 진달래 꽃 여전히 감상적이다.

                  ★그러나 이상화는 처녀작 단조도 야의 우적과 마찬가지 감상적이나 단조보다 1년후에 발표된 나의 침실로 허무주의적이다. 3년후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 자유로운 형식

                  ★1920년대의 소월의 감상적 서정주의에 바탕을 둔 전통지향성과 상화의 서구적 감성의 서정주의에 바탕을 둔 현실 지향성 두시인의 식민지적 시대상황에 맞선 시각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

                  ★이상화 1901-1943 호 상화, 대구, 경성중앙학교 수료 백조 1922, 1924이후 통곡, 선구자의 노래, 1926빼앗긴들에도 봄이오는가,

                  ★정지용 1903~? 옥천 일본 영문학과 1926 학조, 1930시문학, 1930김기림과 모더니즘운동, 1938문장

                  ★김기림 1908-? 호는 편석촌 함북 출생 일본 예술과, 6.25납북, 바다와 나비, 평론 (시작에 있어서 주지적 태도) 1933

                  ★김광섭1906-1977함북경성 와세다대학 영문과 1945 중앙문화협회 창립, 성북동비둘기, 1950문학, 1956자유문학, 본능적 민족주의

                  ★유치환 1908-1967 호 청마, 경남 일본풍산중학, 1931문예월간, 울릉도, 청마시집, 미루나무와 단풍, 파도야어쩌란말이냐, 한국시인협회초대회장, 생명의 서, 일월, 생명파로 분류 근거

                  ★김강균 1914-1993경기도 개성, 소도상고, 가는누님, 자오선, 시인부락, 1950이후, 실업계 투신, 한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이사, 1930이후 모더니즘 운동을 가장 잘 실천한 시인 인정, 공감각적 이미지는 특징적 수사법이다. 와사등.

                  ★박목월 1916-1972 경북경주, 대구계성중학, 조지훈, 박두진, 함께 청록집 간행, 청록파, 청노루, 경상도 가랑잎, 무순

                  ★흔히 시간적 개념으로 현대소설이라고 할 때는 고소설 이후의 신소설, 근대소설, 현대소설 모두 포괄 광의개념 물론 신소설의 출발은 이인직 혈의누1906

                  ★신소설이 1900-1910많이 창작 배경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갑오경장 및 동학농민혁명1894 이어지는 보수적 세력과 개화적 세력간의 갈등은 허약했던 이조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기반을 무너뜨리게 되었다.

                  ★황성신보1897, 대한매일신보1905, 만세보1906, 경남일보1909, 일인발행인 대한일보1904, 중앙신보1906, 신소설의 창작에 촉매

                  ★이인직 친일작가1862-1916, 이해조1869-1927, 최찬식1881-1951, 안국선1878-1926, 김교제 창작작가

                  ★근대소설의 면모는 이광수의 무정 효시 춘원 아광수 1917, 일간지 매일신보에 무정 발표, 이외도 개척자 1917, 흙 1932, 유정1933, 사랑 1938

                  ★1920대표작 소설작가 김동인, 현진건, 염상섭, 나빈, 최학송

                  ★김동인 ~ 1900-1951평양 일본유학 대부호, 대선배인 이광수를 정면으로 비판 동인 창조 창간호, 약한자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광염소나타, 발까락이 닮았다, 광학사, 운현궁의봄, 대수양, 젊은그들

                  ★빙허 현진건 1900-1943 개벽에 희생화 발표, 박종화, 홍사용, 백조동인이다. 빈처, 운수좋은날, 불, b사람과러브레터, 사립정신병원장, 무영탑

                  ★나도향1900-1926 백조에서 대표작 낭만주의 작가, 행랑자식, 물레방아, 뽕, 벙어리삼용이, 26세에 요절

                  ★서해 최학송1901-1932 신경향파 독특한 작가 이광수의 도움으로 조선문단에 편집, 고국, 탈출기, ㅡ믐밤, 박돌의 죽음,

                  ★이광수, 김동인, 홍명희, 역사소설 색다른 경향, 30대 중반에 이상, 김동리, 정비석, 심리소설 샤머니즘에 바탕을 둔 소설

                  ★채만식 1902-1950 세길로 1924데뷔, 레디메이드 인생 1934, 질숙, 소망, 1936, 풍자소설 독류와 태평천하1930

                  ★이효석과 유진오 1920데뷔 1930활동 채만식과 동반자 작가라는 이름, 프로문학 신경향파

                  ★가산 이효석1907-1942도시와유령, 누1933, 粉女1936, 들1936, 메밀꽃필무렵1936

                  ★1930 소설문학에 새로운 전개, 이상과 김유정, 이상 지도의 암실, 비구, 날개, 1936실락원, 지주회사, / 김유정은 2년여 사이에 30여편의 단편 발표 천재작가였다. 소낙비, 노다지, 신춘문예당선 데뷔, 봄봄, 만무방, 동백꽃, 따라지, 산골, 산골나그네, 향토적 서정미

                  ★농민문학을 주로 쓴 이무영과 박영준, 이무영은 제1장 제1과, 흙의노예1940, / 박영준은 1년, 모범경작생, 새우젓

                  ★1930 말에도 광포하게 몰려가는 외적상황과 반대로 토속적인 분위기 젖어 샤머니즘 세계 그려 나가는 신인 김동리와 정비석 등장 김동리는 화랑의후예1935, 산화, 바위, 좌여단, 황토기, 찔레꽃,/ 정비석은 솔구제 데뷔, 성황당, 저신제

                  ★1940 문학사에 있어서 암흑기 국어사용을 금하고 창씨개명을 강요, 조선, 동아 폐간1940, 문장도 폐간1941, 징병제와 학병제1944군국화 물결로 한반도 넘시거리게 했다. 해방직전에 등단한 작가 황순원, 최명익, 안수길, 최태응

                  ★이해조1869-1927 호 열제 조선조 왕실의 후손, 이인직과 쌍벽, 신소설 대가, 자유종, 춘외춘, 봉선화, 자유종은 한일합방해

                  ★이광수 1892 평북 호 춘원 일본 와세다대 철학 안창호와 함께 투옥, 최초 일문소설 사랑인가1909, 어린희생1910, 무정1910, 어린벗에게1917, 소년의비;애1917, 개척자, 흙1932, 유정1933, 사랑1938 계몽적민족주의, 1922개벽

                  ★감자 김동인1900-1951 평양 호 춘사, 일본명치, 약한자의슬픔, 배따라기1921, 광염소나타1930, / 역사소설 운현궁의봄1923, 대수양1943, 젊은그들1949

                  ★현진건1900-1943 경북 대구 호 빙허 일본동경, 타락자1922, 개벽1925, 지새는안개,

                  ★최서해 1901-1932, 함북, 보통학교5학년 중퇴, 고국, 탈출기, 기아와 살육, 큰물진뒤, 호의시대

                  ★채만식 1902-1950전북옥구, 호 백릉 와세다영문과, 탁류1937, 명일1936, 미스터방1946, 논이야기1946, 낙조1948, 도야지1948

                  ★김유정1908-1937강원도, 소낙비, 노다지, 신춘문예, 봄봄, 만무방, 동백꽃1938, 따라지, 산골, 정조

                  ★이상1910-1937 서울, 김해명, 파편의경치, 이상한가역반응, 지도의암실, 심리소설 날개, 효시1936, 실낙원, 종생기, 봄별기

                  ★지식인의 글 지성을 기반으로 학문인 그러나 문학이 되기위해서는 정서적이어야 한다. 출발이 지성이요. 기반이 지성이니만큼 저어적인 낭만과 신비적인 환각의 세계를 고조하므로서 예술성이 독립된다. 표현의 기술이 없으면 문학은 될 수 없다.

                  ★수필은 정신의 운동이다. 마음의 움직임의 그림자다. 바닥에 무수한 자갈과 경사가 없으면 물소리는 없다. 단애가 없으면 폭포는 없다. 시냇물이 맑고 ㄱ 리듬이 아름다운 것은 아는이가 많지만 폭포의 내려찧는 물이 더욱 맑고 리듬이 더욱 고른 것은 생각하는이가 적다.

                  ★다른 문학은 마음속에 얻은 것을 밖으로 펴지만 수필은 밖에서 얻은 것을 안으로 삼킨다. 그러므로 수필의 대상은 자기다. 결국 수필은 외로운 독자일 수밖에 없다.

                    (참고문헌)

                  ☞ 윤용식, 박태상, 조남철, 장부일, 손종흠, 장소원,  공편저 / 대학국어 /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 2002년도

                   

                  1차 세계대전

                    2010.4.16 고홍인 수록

                  기존의 패권세력(영국 중심의 세계, 팍스브리태니커)에 대한 독일과 동맹국들의 도전, 영국은 이미 산업혁명으로 타국보다 앞선 산업화로 인해, 전세계적인 식민지연방을 구성하고 강력한 해군력으로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도 식민지전쟁에서 패하고 영국 중심의 세계경영을 인정했고 아무도 영국의 세계에 도전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19세기에 들어서 독일과 미국이라는 강대국들이 서서히 힘을 축척하기 시작, 독일이란 나라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라는 강국을 제외하고는 크고 작은 도시국가나 공국, 자치주정도의 분열된 국가였는데, 프랑스의 방해와 오스트리아와의 경쟁을 비스마르크라는 걸출한 지도자의 리더쉽에 의거하여 프로이센-오스트리아전쟁(1866), 프로이센-프랑스전쟁(1870-1871)을 차례로 승리로 이끌면서 분열된 여러 게르만족을 통합하고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제국(1871)이 성립되었다.

                  이로 인해, 독일제국은 비스마르크의 뛰어난 외교술로 20여년간 유럽최강의 국가로서 전쟁없이 평화를 이룰수 있었고 그 기간 독일은 훌륭한 교육제도와 사회복지제도, 산업화, 대형공업화, 금융제도의 혁신,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통해, 비약적인 국가발전을 이루어냈다. 독일의 눈부신 성장은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국을 점차 앞지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당시 세계의 패권국이었던 영국을 두렵게 만들었다.

                  문제는 비스마르크를 퇴임시키고 독일제국의 황제로 등장한 빌헬름2세였는데, 그간 비스마르크의 '독일에 의한 유럽의 평화'정책을 파기하고 '강력하고 세계제국으로서의 독일' 을 지향하며 대대적인 군사력강화정책을 펼쳤다. 특히, 해군력강화를 법으로 제정하면서 투자했고 독일의 해군력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외교적으로 비스마르크가 만들었던 프랑스봉쇄망이 붕괴되고 러시아와 프랑스가 영국가 동맹을 맺고 독일을 경계했다.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이탈리아제국을 동맹국으로 만들었고 1910년대에 도달하면서 유럽은 영국-프랑스-러시아 세력과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세력의 대립구도, 유럽의 열강들은 1913년 그 신호탄이 발칸반도에서 터졌다.

                  오스트리아의 영향을 받던 세르비아가 대세르비아주의에 빠져 과격분자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저격하는 '사라예보사건'이 터지고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같은 슬라브계열의 러시아가 세르비아의 손을 들어주었으며,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이던 독일이 선전포고, 이에 영국과 프랑스가 참전하면서 유럽은 걷잡을 수 없는 대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이게 바로 1차대전의 시작였다. 대표적으로 서부전선을 공략하던 독일군은 벨기에와 프랑스를 동시공격하면서 기동전을 펼치려 했지만, 마른전투에서 프랑스군의 반격을 받아 전선이 고착되었고 유일한 성과는 동부 러시아전선에서 타넨베르크전투에서 적은수의 병력으로 러시아군을 격파한 승리였다.

                  이후, 투르크가 독일의 동매국으로 참전하여 동지중해에서 영프연합군과 전투에서 승리하고 영국은 이집트의 수에즈운하를 지키기 위해 아라비아의 왕조들에게 독립을 약속하며 병력을 지원받게 된다. 한편, 유태인자본가들에게도 전쟁자금을 받는 대가로 팔레스타인지역에 유태인국가건설을 약속했으며, 프랑스에게도 종전후 북부아랍지역에 영토분할을 약소하는 등 동시에 여러약속을 하면서 훝날의 분쟁거리를 재공하게 된다.(이때문에 오늘날 이스라엘이 아랍국가와 수차례 국경`영토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영국이 제시한 영토확장과 이익권의 제안에 넘어가 연합국으로 참전을 선언하게 되었다.

                  프랑스 파리를 점령하고 단번에 프랑스를 격파, 러시아전선에 집중한다는 독일의 계획이 러시아의 빠른 병력이동과 프랑스의 반격으로 러시아전선에서는 반격하여 승리했지만, 프랑스전선에서는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고착되어 장기소모전, 참호전이 시작되었다. 영국이 개발한 탱크가 전선에 투입되었지만 처음 개발한 탱크는 전쟁의 방향성을 가늠할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갖지 못했고 전쟁초기 정찰용으로만쓰이던 항공기들이 전투기와 폭격기로 개조되어 유럽하늘에서 치열한 공중전이 전개되었다.

                  해상에서는 우위에 있던 영국해군의 독일봉쇄작전이 이어지고 독일은 이에 무제한잠수함작전으로 연합국의 선박들을 공격했고 전함과 순양함으로 구성된 독일의 대함대는 잠수함으로 영국해군을 소모시키면서 독일해군과 비슷한 수준이 되면 승부한다는 전략이였다. 그러나 많은 피해속에도 영국은 일본해군과 미해군에서 보내는 해군으로 해군력이 더욱 증강되었고 사방에 고립된 독일은 전쟁 내내 물자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해상에서 유일한 전투는 1914년 12월 포클랜드해전과 1916년 5월 유틀란트해전인데, 본국으로 귀환하던 독일 동양함대가 남미 포클랜드 섬 근방 바다에서 영국 순양함대에 의해 전멸당했고 이때 엠덴호가 인도방면으로 탈출하여 인도양의 연합국에 대한 해적선이 되어 연합국에 피해를 입혔지만 영국순양함에 의해 격침되었다. 영국과 독일의 주력함대가 충돌한 전투에서, 영국함대는 실질적으로 수차례의 충돌 후 독일함대와 직접적인 전면충돌을 꺼리고 퇴각하면서 전투가 종식되었다. 해전결과를 보면 영국함대의 손실이 독일함대에 두배 달했는데 실질적으로는 영국해군이 건제함으로 독일은 영국해군의 봉쇄망을 격파하지 못함으로서 영국이 전략적으로 승리했다.

                  1917년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해 보이던 세계대전에 큰 방향성을 제시한 일련의 두 사건이 일어났는데, 한가지는 미국의 참전이고 다른 한 가지는 러시아혁명으로 소련연방이 성립되면서 소련이 유럽전쟁에서 일방적으로 빠지면서 독일이 동부전선이 사라지고 서부전선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였다. 미국은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자국국민이 피해를 입자 참전하게 된 것이었다. 미국은 매달 20만의 병력을 유럽전선으로 보냈고 방대한 경제능력으로 이미 영국경제를 앞지른지 오래되었다. 연합국에 군수품을 지원하고 무기를 보냈다.

                  한편, 러시아혁명으로 동부전선에 있던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증원하면서 다시 독일은 일전을 벌이게 되었으나, 1918년 9월 15일 발칸반도의 마케도니아전투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면서 동맹국이던 불가리아의 군사력이 붕괴, 9월 27일 불가리아가 항복했고 10월에는 오스트리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투르크와 함께 휴전을 요구했다. 독일은 남부전선에 투입할 병력의 여력도 공업력도 돈도 남아있지 않았다. 더불어, 독일 내부에서 반군사독재주의 혁명의 기운이 넘쳐흐르면서 베를린혁명이 일어나고 빌헬름2세는 임시방편으로 독일황제자리를 내놓으며 프로이센의 왕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표명을 했으나 혁명정부에게 거부당하고 독일황실은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새로운 독일내각은 항복을 선언하고 이때부터 독일의 또다른 베르샤유조약이 체결되었다.

                  불멸의 제국 - 오스만 제국

                   

                   

                  몽골제국의 힘이 약해지던 13세기, 이슬람제국은 여러 국가로 분열되어 각각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13세기 말 동로마 제국의 국경지대에서 오스만 1세가 오스만가를 중심으로 오스만 연합국을 건국하였다. 1326년 오스만 연합국은 동로마 제국의 지방도시 점령을 시작으로 영토를 확대하기 시작하여 오스만 제국을 건설한다. 1346년 비잔틴제국과 동맹을 맺고 오스만 제국은 발칸 반도에 진출하여 유럽 지역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술탄(이슬람 제국의 황제 칭호)의 직속부대인 예니체리를 창성하고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발칸 제후국들의 연합군을 물리쳤고, 1396년에는 십자군을 격파하는 등 영토를 크게 넓히지만 몽골 제국의 후예였던 티무르 제국에게 패배하면서 제국의 확대는 일시적으로 멈춘다.

                  오스만 제국의 확장을 저지한 것은 언제나 동쪽이었다. 몽골 제국의 후예였던 티무르 제국이 1차로 오스만 제국과 경합을 벌이고, 티무르 제국이 무너지자 같은 위치에서 시아파 이슬람 국가인 사파비 왕국 탄생해 오스만 제국의 영토 확장에 걸림돌이 된다. 티무르 제국의 힘이 약해지는 틈을 타 내실을 다지고 1453년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며 광대한 영토를 구축하여 이슬람 제국을 통일한다. 15세기 오스만 제국은 발칸 반도에서 소아시아, 중앙유럽과 북아프리카까지 확장했으며 흑해 북해와 에게 해의 섬들까지 영향력을 미쳐 흑해와 에게 해를 오스만 제국의 내해로 만들 정도로 광대한 세력을 구축한다.


                  * 오스만 제국의 최대 영토, 당시 유럽은 오스만 제국에게 힘을 쓰지 못하였고, 동쪽에서 강대한 세력이 나타나 오스만 제국은 더 이상 서쪽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오스만 제국은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당시 유럽의 최대 강국이었던 신성로마제국의 수도 빈을 1개월 이상 포위하는 등 당시 세계최강대국으로의 면모를 과시했으나, 동쪽의 다른 이슬람 계열이었던 시아파 이슬람 국가, 사파비 왕조의 힘이 급격히 커지면서 동쪽의 국경에 힘을 집중하게 되어 결국 유럽의 공략에는 실패한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비잔틴(동로마) 제국은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한다. 신성로마제국의 수도 빈을 포위한 오스만 제국, 1개월간이나 빈을 포위공격했지만 결국 함락에는 실패한다. 18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의 강력한 군대였던 예니체리의 반란, 개혁실패 등으로 세계 제1차세계대전에서 패하고, 결국 1922년 멸망하게 되고, 이후 터키가 오스만 제국이 시작했던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건국한다.


                  * 오스만 제국은 1922년 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멸망하고, 지방정권은 모두 독립한다.

                   

                   


                  모더니즘

                   

                  modernism

                  상징주의·초현실주의·입체파·소용돌이파 등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다. 모더니즘은 더 직접적으로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초에 융성했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는 19세기의 유물론적 경향과 관련이 깊은데 모더니즘은 그러한 세계관은 물론, 일체의 물질주의와 산업주의를 개인정신의 부자유로 해석하고 배격했다.

                  프랑스에서는 20세기초 모더니즘 운동의 기원에 해당하는 상징주의 예술이 일찍이 19세기부터 자리잡았기 때문에 모더니즘이라는 애매한 명칭이 잘 사용되지 않았다. 1908~14년에는 소설가와 시인들이 바로 이전 시대뿐 아니라 낭만주의 이후 전체 시기의 문학전통에 도전하는 혁신과 실험의 주목할 만한 생산적인 시기였다. 낡은 시적 전통에 대항하여 이미지스트들은 목가적인 정감이나 제국주의적인 수사법이 아니라 정확한 기술(description)과 심상(心像)의 환기를 가능하게 하는 시적 언어를 정련하려고 했다.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은 자유시와 비정형시를 사용했으며, 이미지를 가장 중요한 도구로 삼았다.

                   

                   

                  보통법(common law)

                   

                  보통법(common law)은 영국의 역사에서 발달한 일종의 관습법이다. 보통법(common law)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불가피하다. 영국은 기본적으로 왕이 지배하였지만, 봉건영주의 힘이 매우 강하였다. 따라서 영국은 왕이 국가를 지배하는 권한과 봉건영주가 자신의 봉토를 지배하는 권한이 처음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즉, 영국은 역사적으로 지방의 일은 지방이 처리하는 지방자치제도가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구조인 것이다. 중세 대부분의 유럽국가가 그러하듯이 영국도 지방영주의 권한과 왕의 권한은 서로 반비레 관계에 있었다. 즉, 지방봉건영주의 권한이 크면 왕이 권한이 약화되고 왕의 권한이 크면 지방영주의 권한이 약화되었던 것이다. 영국은 처음에는 지방영주의 힘이 강했지만, 점차적으로 왕의 권한이 강화되기 시작하면서 군역과 세금을 부담시켰으며, 왕의 마음대로 부당한 벌금이나 사람들(자유민)을 체포하기에 이르기 된다. 그리고 왕은 뛰어난 부하들(행정관료)를 곁에 두고 그 권한을 휘두르면서 스스로 입법과 행정, 사법의 역할을 모두 행사한다. 그러나 1215년  존왕이 자신의 권한을 지나치게 남용함에 따라 지방의 영주들은 왕의 권한을 제지하기에 이른다. 이때 지방영주들이 왕의 권한보다 더 강한 힘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내세운 것이 보통법(common law)의 기원이다. 보통법(common law)는 그 뒤에 권리청원과 권리장전을 거치면서 더 구체화되고 더욱 많은 이론적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귀족들이 왕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왕보다 우월한 권한으로 인정되는 관습법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권리청원과 권리장전을 거치면서 왕보다 우위에 있는 보통법(common law)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귀족에게 달라고 요구하게 되고, 결국엔 왕이 가지고 있던 사법권을 귀족들이 빼앗아 오게 된다. 따라서 보통법(common law)의 시작은 사법권한의 분야에서 귀족들이 왕에 우선하는 관습법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통법(common law)은 관습법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즉, 사법권을 행사할때 명문으로 정해져 있는 법이 아니라, 명문이 없는 규정에 의해 재판을 해야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문법의 체계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하나는 명문의 규정이 없으므로 법관의 마음대로 모든것이 행해지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정말 상식적이고 정형적인 사건만 취급하는 형태이다. 사법권이 귀족의 마음대로 행사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특히나 왕이 마음대로 행사하는 사법권을 귀족이 '함부로 행사하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빼앗아 온 것인데 이를 마음대로 행사할 수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귀족이 담당하는 사법권은 정형적이고 일반적인 사건에 한하게 된다. 그래서 이름도 보통법(common law)가 된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보통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을 규율하는 법이라는 개념인 것이다.

                  그 옛날 찢어버렸던 편지 초안을 우연히 2003.8.6발견하고 순간 충격적인 감회로 소중한 가치를 다시 한번 음미하였다. 그러나 20여년 지난 과거가 세삼 그리워 지는 것은! 찾을 수 없는 그 사람이기에.......79년 당시에 상도2동 거주했던 미성년자 정○화 님의 상기 내용 주인공을 찾습니다. 옛날에 연인이었으나 다시 만나면 사과나무(고삿갓 제88호 참조)로 우대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 하겠습니다. 이메일로 연락 주세요.(핸드폰 메시지로 연락 가능)

                    사과나무 후보(작품성)

                   ☞작은 얼굴, 앞뒤 꼭지 삼천리, 개미허리 모가지에 말라비트러진 지푸라기 같은 몸매와 일급수 심성! (아직 세상에서 본적이 없다. 고삿갓 제88호 참조)

                  ☞어린 사과나무가 자라도록 퇴비가 될 수 있다면 기꺼히 나에게 남겨진 자존심까지도 ......

                  2010. 4. 16 고삿갓

                   

                   

                  ☞이메일hongin24@hongin24.com......                  ..☏010-3946-1116                         관리자 고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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